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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춘 사건

제목 훈춘 사건
한자명 琿春事件
유형
시대 근대
관련국가 중국
유의어 혼춘 사건(琿春事件)
별칭•이칭

[정의]

1920년 9월 만주 무장 독립군을 탄압할 명분을 만들기 위해 일제의 사주를 받은 마적단이 훈춘(琿春)을 습격한 사건.

[내용]

1919년부터 1920년에 걸쳐 만주 지역에서 무장 독립 투쟁이 활발하게 전개되자, 조선 총독부와 조선주둔군은 이른바 ‘간도 지방 불령선인 초토 계획(間島地方不逞鮮人剿討計劃)’을 세워 독립군을 대대적으로 공격하려 하였다. 그러나 뚜렷한 명분 없이 한중 국경을 넘어서 군사 행동을 하는 것은 외교적 마찰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에 일제는 훈춘 사건을 일으켜 군사 행동의 근거를 마련하였다.

훈춘 사건은 두 차례에 걸쳐 일어났는데, 모두 일본의 사주를 받은 마적단의 소행이었다. 1920년 9월 12일 오전 5시경 마적 300여 명이 약 3시간에 걸쳐 훈춘 시가를 습격하여 약탈, 방화하고 인질을 사로잡아 동쪽으로 빠져 나갔는데, 이것이 제1차 훈춘 사건이다. 그리고 10월 2일, 제2차로 마적단은 훈춘을 습격하여 일본 영사관을 불태우고 일본인 거류지를 공격하였다. 일본군은 훈춘을 공격한 마적단 속에 ‘불령선인’과 ‘러시아 과격파’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이는 훈춘을 공격한 마적단이 단순한 마적단이 아니라 배일(排日) 의도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러시아 공산주의 세력과도 연계되어 있는 정치적인 집단이라는 것을 주장함으로써 일본군의 군사 행동 명분을 만들고자 했다.

1920년 10월 7일 일본 내각은 ‘제국신민의 보호’를 명분으로 일본군의 파견을 결정하고 훈춘 및 간도 지방에 있는 독립군을 ‘소탕’할 것을 명했다. 이에 따라 약 2만여 명의 일본군이 만주로 이동하여, 독립군을 공격하였다. 일본군은 독립운동의 기반을 완전히 말살하기 위하여 수천 명의 한인들을 살해하고, 수천여 호의 가옥을 불태우는 등 한인 거주지를 철저하게 파괴하였다.(간도 참변 또는 경신참변) 이로써 1919년 3⋅1 운동 이후 키워진 독립 역량이 크게 손상되었고, 독립군 부대들은 북만주로 이동하게 되었다.

▶ 관련자료

ㆍ훈춘 사건(琿春事件)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