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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계몽 운동

제목 농촌 계몽 운동
한자명 農村啓蒙運動
유형
시대 근대
관련국가
유의어 브나로드 운동(Vnarod運動), 문맹 퇴치 운동
별칭•이칭

[정의]

1920~1930년대 민족 운동과 관련한 청년 학생이나 지식층이 농민의 의식과 지식 등을 계몽하기 위해 농촌 사회에서 행한 사회 교육 운동.

[내용]

농촌 계몽 운동은 농민들을 대상으로 한 것으로 농사일을 끝낸 저녁때에 강연회와 토론회, 독서회, 야학 등의 형태로 이뤄졌다. 특히 농한기인 겨울에 많이 실시되었고, 학생들이 여름과 겨울의 방학 때를 활용해 농촌에 와서 활동했다. 한국에서 이 운동은 192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일제의 우민화 정책으로 인해 초등교육도 받지 못하는 아동을 위하여 학교 교육에 대신하는 교육이라든지, 문맹자를 위한 글자 보급,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교육 혜택을 못 받는 여성을 위한 교육의 형태로 이뤄졌다. 또 농촌의 생활 개선과 농민의 사상 계도가 시도되기도 했다.

농촌 계몽 운동은 각 민족 운동 진영이 농촌으로 조직을 확대하기 위한 ‘농민 획득 경쟁’의 성격도 함께 지녔다. 1920년대 들어 일제의 식민 지주 경영과 지주들의 착취에 대항하여 농민 운동이 전국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했고, 1924년 조선노농총동맹(朝鮮勞農總同盟)이 결성되었다. 당시 농민 운동은 사회주의 사상 확산과 맞물려서 좌경적 색채를 강하게 띠고 있었다. 사회주의 계열 청년과 지식인들이 농촌으로 진출하여 농민들의 이해를 대변하면서 농민 운동을 주도하였다.

이에 민족주의 계열에서도 농촌 운동을 전개하였는데, 이들의 활동은 대체로 문맹 퇴치와 생활 개선 등을 통해 농민의 실력을 향상시킨다는 계몽적 활동에 중점을 두었다. 가장 적극적이었고 성과가 있었던 것은 천도교 계열이었다. 천도교는 1925년 조선농민사를 설립해 전국적으로 운동을 확산시켰는데, 농민 야학을 실시하고 농민에 대한 계몽 활동을 전개하는 것을 넘어서 협동조합 운동, 공동 경작 운동까지 진행시켰다. 기독교계에서도 1926년 이후 학생YMCA 농촌부를 중심으로 계몽 활동을 적극 추진했다. 이들은 한글 보급과 농사 개량 강습회의 개최하면서 농민 계몽에 힘을 쏟았고, 일부에서는 협동조합 조직 등을 추진하기도 했다. 동아일보 계열은 1928년 문맹 퇴치 운동을 전개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1931년부터 1934년까지 ‘브나로드(v narod) 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하였다. 주로 여름 방학에 귀향하는 학생을 이용해 농민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생활 개선 등의 농민 계몽 활동을 전개하였다. 동아일보는 이를 통해 농민들에 대한 계몽뿐만 아니라 파견되는 학생들에 대한 의식화와 조직화도 꾀하였다. 조선일보사는 ‘아는 것이 힘이다. 배워야 산다’는 구호로 1929년부터 한글 교재를 보급하고, 전국 순회강연을 통해 문자 보급 운동을 전개했다. 한글 연구를 진행하던 조선어 학회에서도 한글 보급을 위한 강연회와 한글 책자 보급 등 문맹 퇴치 운동을 전개했다.

이러한 민족주의 계열의 농촌 계몽 운동은 1930년대 들어 사회주의자들의 농민 운동과 일제의 농촌 진흥 운동에 대응하는 성격을 띠었다. 1930년대 사회주의 세력은 농민과 연대하여 토지 분배와 계급 투쟁을 목표로 하는 혁명적 농민 조합 운동을 진행시켰다. 또한 조선 총독부는 세계 대공황기 농촌의 피폐에 대한 사회안정책으로서 농촌 진흥 운동을 일으켰다. 이들 사이에 민족주의 계열의 농민 계몽과 농촌 구제를 목표로 한 농촌 계몽 운동이 위치했던 것이다.

그러나 농촌 계몽 운동은 일제의 통제 아래 문맹 퇴치와 생활 개선 등의 기본적 농촌 계몽 운동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고, 농민의 조직화 및 협동조합 운동 등 보다 진전된 형태의 운동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특히 생활 개선과 위생 지식 보급 등의 문제는 일제가 추진하던 농촌 진흥 운동에서도 유사하게 진행되었기 때문에 차별되지 못하고, 관제 농민 운동인 농촌 진흥 운동으로 포섭되는 양상도 나타나게 되었다. 혁명적 농민 운동을 전개하던 사회주의 계열에서는 민족주의 계열의 농촌 계몽 운동을 일제와 타협한 개량 운동이라고 공격하였다. 일제는 1933년 기존 농민 관련 단체들을 관제 농민 기구인 ‘조선농회(朝鮮農會)’로 강제로 통합하는 등 농촌에 대한 통제를 더욱 강화하였다. 이렇게 관제 농촌 운동인 농촌 진흥 운동이 전면적으로 전개되면서 농촌 계몽 운동은 더 이상 진전되지 못한 채 쇠퇴하였다. 한편 사회주의 계열의 혁명적 농민 조합 운동도 일제의 탄압 속에 1930년대 중반부터 소멸되어갔다.

▶ 관련자료

ㆍ농촌 계몽 운동(農村啓蒙運動)
ㆍ문맹 퇴치 운동(文盲退治運動)
ㆍ문자 보급 운동(文字普及運動)
ㆍ브나로드 운동(Vnarod運動)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