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용어 해설시대별 > 삼국 시대

국학

제목 국학
한자명 國學
유형
시대 삼국 시대, 통일 신라와 발해
관련국가 신라, 통일 신라
유의어
별칭•이칭

[정의]

신라의 교육 기관.

[내용]

신라는 648년(신라 진덕 여왕 2년) 당(唐)과 군사 동맹을 맺었고, 이후 당의 제도를 도입하여 정치 제도를 정비해 나갔다. 여러 관청을 설치하는 한편, 그 관청에서 일할 관료들을 양성하는 교육 기관도 함께 마련하였다.

651년에 실무 관직인 대사(大舍)를 설치하여 교육 기관이 본격적으로 체계화되었다. 682년(신라 신문왕 2년)에는 예부(禮部)의 하위 관청으로 국학(國學)이 설치되어 인재를 교육하고 양성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경덕왕(景德王, 재위 742~765) 대에 국학은 태학감(太學監)으로 이름을 바꾸었으나, 바로 뒤이은 혜공왕(惠恭王, 재위 765~780) 대에 다시 국학이라는 명칭을 회복하였다.

경(卿) 1명이 장관으로서 국학의 업무를 총괄하였고, 박사(博士)와 조교(助敎)가 교육을 담당하였다. 또 실무직으로 대사와 사(史)가 배속되었다.

국학은 당의 유교 교육 기관인 국자감(國子監)을 참고하였으므로, 유교 교육에 중점을 둔 교육 기관이었다. 유교 정치 사상을 바탕으로 왕권을 보좌할 관료를 양성함으로써, 기존의 진골 귀족 중심 정치 체제를 바꾸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설치되었다. 그러므로 6두품 출신 또한 국학을 통해 정치적 입지를 확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진골 귀족 세력이 강성해지는 신라 하대(下代)에 들어서면서 국학의 중요성은 점차 감소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국학에서는 『논어(論語)』와 『효경(孝經)』, 『예기(禮記)』, 『주역(周易)』, 『상서(尙書)』, 『모시(毛詩)』,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문선(文選)』 등 유교 경전을 주로 교육하였다. 하지만 유교 사상 자체보다는 행정과 외교 실무의 바탕이 되는 한자(漢字)와 문장 작성 능력을 습득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졌다.

국학에는 관등이 없거나 12등 대사(大舍) 이하인 15세에서 30세에 이르는 귀족 자제가 입학하였다. 주로 6두품 이하가 국학에서 교육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재학 연한은 9년이었으며, 관직에 나아가 관등이 10등 대나마(大奈麻)나 11등 나마(奈麻)에 이르면 졸업하였다. 학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학생은 퇴학당하기도 하였다.

국학에서 수학하던 학생들은 일종의 졸업 시험인 독서삼품과(讀書三品科)를 거쳐 관직에 나갔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진골 귀족에게 정치 권력이 집중되던 신라 하대에는 국학을 거치지 않은 진골 출신 귀족들이 주요 관직을 독차지하였기 때문에, 국학과 독서삼품과가 보편적인 관료 선발 방식은 아니었다. 국학 출신은 주로 중하위급 실무직이나 지방 관직 등에 진출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 관련자료

ㆍ국학(國學)
ㆍ태학(太學)
ㆍ태학감(大學監)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