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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도호부

제목 안동 도호부
한자명 安東都護府
유형
시대 삼국 시대, 통일 신라와 발해
관련국가 고구려, 발해
유의어
별칭•이칭

[정의]

고구려 멸망 후에 당(唐)이 옛 고구려 지역을 통치하기 위해 설치한 군사⋅행정 기구.

[내용]

도호부(都護部)는 당이 주변 국가를 정복하고, 그 지역을 통치하기 위해 설치한 군사⋅행정 기구이며, 도독부(都督府)나 주현(州縣) 같은 하위 행정 단위를 지휘하는 최고 기관이었다. 당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안동 도호부(安東都護府)를 설치한 것을 비롯하여 안북(安北), 선우(單于), 안서(安西), 안남(安南), 북정(北庭) 등 모두 6개의 도호부를 두었다.

안동 도호부는 고구려 멸망 직후 고구려의 수도였던 평양(平壤)에 설치되었다. 당은 안동 도호부를 통해 고구려 영토에 설치하려고 했던 9도독부 42주 100현뿐만 아니라, 백제 지역에 설치했던 웅진 도독부까지 포함한 영역을 관할하려 하였다.

하지만 검모잠(劒牟岑) 등 고구려 유민들이 일으킨 고구려 부흥 운동으로 인해, 670년(신라 문무왕 10년) 당은 안동 도호부를 요동(遼東) 지역에 있는 신성(新城)으로 옮겨야만 했다. 또 나당 전쟁(羅唐戰爭)에서 패배 한반도에서 물러나면서 676년(신라 문무왕 16년) 2월에는 다시 요동성(遼東城)으로 이동하였다. 하지만 다음 해 2월 고구려의 마지막 왕이었던 보장왕(寶藏王, 재위 642~668)을 요동 도독(遼東都督)으로 삼아 고구려인들의 자치를 허용하면서 다시 신성으로 복귀시켰다.

696년(신라 효소왕 5년) 요서(遼西) 지방에서 거란족(契丹族)이 반란을 일으키자 당 본토와 안동 도호부를 연결하는 길이 끊기고, 698년 발해(渤海)가 건국되면서 안동 도호부를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이에 699년 안동 도호부를 폐지하고 안동 도독부를 설치하였다. 그러나 704~705년 즈음에 다시 도호부가 복구되었다. 714년에는 위치를 평주(平州)로 옮겼다가, 734년에 다시 요동군으로 이동시켰다. 하지만 안동 도호부의 실권을 당의 지방 정권 중 하나인 평로절도사(平盧節度使)가 차지하게 되면서 안동 도호부는 유명무실해졌다. 이후 안녹산(安祿山)의 난을 계기로 758년경 안동 도호부는 폐지되었다.

▶ 관련자료

ㆍ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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