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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공

제목 조공
한자명 朝貢
유형
시대 삼국 시대, 고려 시대, 조선 시대
관련국가 고구려, 백제, 신라, 발해, 고려, 조선, 당(唐), 송(宋), 원(元), 명(明), 청(淸)
유의어 사대조공(事大朝貢), 직공(職貢)
별칭•이칭

[정의]

전근대 동아시아의 중국 중심 국제 관계 속에서 주변국들이 사신(使臣)을 파견해 예물 등을 진상하던 행위.

[내용]

원래 조공은 고대 중국의 제후가 천자(天子)를 직접 알현하여 예물 등을 진상하면서 신하의 예의를 지켰던 행위를 의미한다. 천자는 신하의 조공에 대한 답례로 제후의 지위를 책봉(冊封)하고 은사품(恩賜品)을 내려 주었다. 따라서 조공 책봉 관계는 천자와 신하 사이의 군신 관계를 성립시키는 매우 중요한 의례 중 하나였다.

이러한 원칙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확대되어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전근대 동아시아 국가들의 외교 관계에도 적용되었다. 중국과 외교 관계를 맺고 정치⋅경제⋅문화 등의 분야에서 교류를 원하는 국가들은 먼저 조공을 해야만 했고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국왕의 지위를 책봉받았다. 결국 전근대 동아시아 국가들이 조공 책봉 체제를 받아들였다는 것은 중국 중심의 외교 질서를 받아들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시에 조공 책봉 관계를 통해 중국과 주변국의 상호 이해관계가 일치하게 되면서 국제 관계가 유지되었던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한국 역사 속에서 중국에 대한 조공 기록은 삼국 시대부터 나타난다. 이후 중국과의 조공 책봉 관계가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조선이 건국하면서 양국의 조공 책봉 관계는 크게 정비되었다. 조선과 명나라의 외교 관계를 조공 책봉 관계의 전형적 모습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조공에 사용되었던 예물은 주로 중국에서 요구했던 물건과 진상하는 국가의 특산물 등으로 구성되었다. 조선은 정기적 또는 비정기적인 사신행을 통해 조공을 하고, 명나라는 이에 대하여 답례로 물품을 내렸는데, 조선 시대에 들어와 정비된 이러한 조공 관계는 청나라에 대해서도 큰 차이 없이 지속되었다.

실제로 조선은 다른 국가보다 중국과의 사대(事大) 관계를 더욱 중요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조선의 외교적 태도가 중국에 대한 종속성을 보여 주는 것은 아니었다. 조공 책봉 관계가 조선이 성립되어 있던 시기의 국제 관계에서 반드시 필요한 외교 절차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선이 중국과의 교류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조공 책봉 체제 자체를 거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 관련자료

ㆍ공헌(貢獻)
ㆍ조공(朝貢)
ㆍ조공국(朝貢國)
ㆍ직공(職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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