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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구

제목 훈구
한자명 勳舊
유형
시대 조선 시대
관련국가 조선
유의어 훈구공신(勳舊功臣), 훈구대신(勳舊大臣), 훈구세력(勳舊勢力)
별칭•이칭

[정의]

조선 전기 세조(世祖, 재위 1455~1468)의 집권을 도왔던 인물들이 공신(功臣)과 고위 관직에 임명되면서 권력을 장악하고 형성했던 정치 세력.

[내용]

원래 훈구는 훈구공신(勳舊功臣)⋅훈구대신(勳舊大臣) 등의 용어에서 보듯이 오랫동안 임금 곁에서 관리로 지내며 공로를 많이 세웠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수양대군(首陽大君, 世祖)이 계유정난(癸酉靖難)과 사육신(死六臣) 사건 등을 거쳐 왕위에 즉위하는 과정에서 수양대군을 도왔던 측근들은 공신에 임명되고 동시에 주요 관직을 맡게 되었고, 이후 이들은 성종(成宗, 재위 1469~1494) 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했던 신흥 정치 세력 ‘사림’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훈구’라 불리게 되었다.

사림과 훈구는 사림파와 훈구파 등의 용어로 표현되기도 하면서 성종에서 중종(中宗, 재위 1506~1544)의 재위기 동안 있었던 정치 세력 간의 대립 양상을 설명하는 용어로 쓰이게 되었다. 사림이 공신과 대신들의 부정부패를 비판하고 도덕성과 근본주의적 성리학 이념을 강조했던 정치 집단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던 것에 비해 훈구는 이러한 정치적 집단성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따라서 새로운 연구들에서는 훈구를 사림에 대비되는 정치 세력으로 표현하는 설명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사림은 성종에서 중종의 재위기를 거치면서 대간 활동을 통해 자신들의 역할과 정치적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확대했다. 사림의 영향력 확대는 당연히 훈구 대신들의 권력을 축소시키는 역할을 했다. 여기서 비롯된 충돌 양상은 결국 사화(士禍)라는 정치적 사건의 원인이 되었다. 이후 사림은 조정이나 재야에서 성리학적 공도(公道)를 실현하려는 정치 집단의 성격을 공인받은 반면 훈구는 정치 집단의 성격을 유지하지 못하고 영향력이 점차 감소되어 갔다.

▶ 관련자료

ㆍ훈구 대신(勳舊大臣)
ㆍ훈구 세력(勳舊勢力)
ㆍ훈구(勳舊)
ㆍ훈구파(勳舊派)
ㆍ훈척 세력(勳戚勢力)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