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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조법

제목 도조법
한자명 賭租法
유형
시대 조선 시대
관련국가 조선
유의어 도지법(賭地法), 도작법(賭作法), 도조제(賭租制), 정액 지대(定額地代), 정조법(定租法)
별칭•이칭

[정의]

조선 후기 소작농이 지주(地主)에게 매년 일정한 소작료를 바치는 방식의 지대법.

[내용]

조선 후기 토지를 소유하지 못한 경작자들은 지주에게 토지를 빌린 대가로 지대(地代)를 바쳤다. 지대를 바치는 방식 중에서 매년 일정한 양을 정해 바치는 방식을 도조법이라고 한다. 도조를 흔히 도지(賭地)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도조에는 생산물을 바치는 경우와 화폐를 바치는 도지전(賭地錢)이 있다.

도조로 바치는 지대의 액수는 소작인과 지주가 계약을 맺을 때에 정해지는데 일반적으로 평균적인 수확량을 기준으로 정해졌다. 소작인들은 정액의 지대만 상납하고 잉여 생산물을 확보할 수 있는 도조를 선호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17세기 이후 지대 수취 방식은 타조법(打租法)에서 도조법으로 변해 갔는데, 논보다는 밭에서 도조법이 일찍부터 나타나고 있었다. 밭에서는 보리나 콩 등이 기상 조건의 영향을 덜 받았기 때문에 정액 지대(定額地代)로 고정되었다. 한편 논농사의 경우, 가뭄이나 기상 조건에 따라 수확량의 변화가 컸기 때문에 수확량을 기준으로 반으로 나누는 병작제(竝作制), 즉 타조법이 비교적 오랫동안 존속하였다.

한편 소유 형태에 따라 도조를 선호하는 경향도 나타났다. 토지의 소유주가 궁방(宮房)이나 관청일 경우 매년 고정된 수입을 확보하는 것이 바람직했기 때문에 도조를 선호했고, 토지 소유주가 원거리에 거주하는 경우에도 관리하기 어렵거나 지대를 수취하기 곤란했기 때문에 도조를 선택하기도 했다. 1704년(숙종 43)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의 기록에 따르면, 도조법을 시행한 토지에서 비교적 적은 양의 지대를 납부하고 있었다. 이에 농민의 입장에서는 도조법을 적용받을 경우 수확량을 증대시키기 위해 새로운 농법을 도입하는 등 소작인의 독립적인 경영이 나타날 여지가 많아졌다.

지대의 변동은 당시 경제적 상황과 지주나 소작인의 필요에 따라 크게 변했다. 조선 후기 도조법이 증가하는 추세에 있었으나 전체 지대 수취 체제가 일률적으로 도조법으로 변했던 것은 아니다.

▶ 관련자료

ㆍ도조법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