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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벌 운동

제목 북벌 운동
한자명 北伐運動
유형
시대 조선 시대
관련국가 조선, 청(靑)
유의어 북벌론(北伐論), 북벌 계획(北伐計劃), 북벌 정책(北伐政策)
별칭•이칭

[정의]

조선 효종(孝宗, 재위 1649~1659) 대에 국가를 재정비하여 청나라를 정벌하자는 운동.

[내용]

17세기 전반 동아시아의 정세는 급격히 변화하였다. 중원은 한족(漢族)이 지배하는 명나라에서 만주족(滿洲族)이 지배하는 청나라로 교체되었고, 일본은 오랜 전국 시대(戰國時代)를 끝내고 도쿠가와 막부의 일원적인 통치 아래 들어갔다. 그 사이 한반도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전장이 되어, 조선 정부는 전쟁 이후 피폐해진 백성의 생활과 실추된 국가 체제를 정비해야 하는 이중의 과제를 안고 있었다.

특히 병자호란은 오랑캐인 청나라에게 패배했다는 이유로 조선 지식인의 정신적 충격은 상상을 초월하였다. 굴욕적인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로 항복한 조선은 청나라에 패배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후 인조(仁祖, 재위 1623~1649)의 두 아들인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갔다. 소현세자가 심양 생활을 끝내고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의문의 죽음을 맞았고, 뒤이어 봉림대군이 즉위했다.

1649년(효종 즉위) 봉림대군이 효종으로 즉위하면서 오랑캐인 청나라를 정벌하자는 북벌 운동이 시작되었다. 그때까지도 강남 지역에는 남명(南明) 정권이 존속하고 있었고, 청나라는 아직 체제가 완전히 정비되지 못하였다.

효종은 반청척화파(反淸斥和派)를 요직에 배치하여 어영청⋅수어청⋅훈련도감의 군사력을 강화하였고, 대동법 실시를 확대하는 등 경제 개혁에도 박차를 가했다. 효종은 복수설치(復讐雪恥)⋅춘추의리(春秋義理) 등을 강조하는 송시열(宋時烈)을 등용하여 북벌의 추진력을 강화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송시열은 직접적인 정벌이 아니라 정사(政事)를 바르게 함으로써 오랑캐에 대응하자는 논리를 폄으로써 북벌 정책은 실제로는 전란 이후 무너진 국가의 재정비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북벌 운동을 통해 효종은 부왕 인조가 잃어버린 국왕의 위엄을 되찾고자 하였으며, 송시열을 비롯한 서인 산림들은 출사의 명분을 찾았다. 그러나 1659년(효종 10) 효종의 죽음과 1662년(현종 3) 남명 정권이 붕괴하면서 북벌 운동은 실질적인 동력을 잃었다.

[의의]

효종은 강력한 북벌 의지를 표명하였지만 실제로 군사력은 공격용이 아닌 방어용으로 정비되었으며, 개혁은 내실을 다지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북벌 운동은 오랑캐의 나라를 섬겨야 하는 현실 속에서 조선 사회가 자존심을 회복하면서 국가 기강을 다잡기 위한 방책이었다고 할 수 있다.

▶ 관련자료

ㆍ북벌 계획(北伐計劃)
ㆍ북벌 운동(北伐運動)
ㆍ북벌 정책(北伐政䇿
ㆍ북벌(北伐)
ㆍ북벌론(北伐論)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