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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 양행

제목 이화 양행
한자명 怡和洋行
유형
시대 근대
관련국가 조선, 청(淸), 영국
유의어
별칭•이칭

[정의]

1832년 영국인 윌리엄 자딘(William Jardine)이 제임스 매티슨(James Matheson)과 함께 광둥성(廣東省) 광저우(廣州)에 설립한 무역 회사.

[내용]

이화 양행의 ‘이화(怡和)’는 행복한 화합이라는 뜻이고, 영문명은 자딘 매티슨 상회(Jardine Matheson & Co.)이다. 이화 양행은 주로 아편과 차(茶)를 사고팔았는데, 1833년 영국 의회가 동인도 회사의 중국 무역권을 몰수하자 그 틈을 이용하여 아시아에서 가장 큰 양행으로 성장하였다. 지금도 자딘 매디슨 그룹(Jardine Matheson Group)은 홍콩의 재벌 가운데 하나이다.

이화 양행은 인도의 아편과 필리핀의 향신료, 설탕 등을 중국에 들여오고 중국의 차와 비단 등을 영국으로 수출하면서 부를 축적하였고, 영국이 아편 전쟁을 일으키는 과정에도 개입하였다. 난징 조약(南京條約) 체결 이후에는 상하이, 홍콩 등에 진출하였다. 1859년에는 일본 요코하마에 지점을 개설하여 고베와 나가사키까지 영업을 확장하였다.

이화 양행은 묄렌도르프(Paul George von Mӧllendorf, 1848~1901)의 주선으로 한국에 들어온 최초의 서양 양행이다. 묄렌도르프는 한국으로 건너오기 전에 이미 이화양행의 대리인 거빈스(W. R. Gubins)와 친분이 있었다. 이화 양행은 이 인연을 통해 1883년에 상하이-제물포 간 정기 항로를 개통하고 광산 채굴권을 획득할 수 있었다. 제물포로 들어온 거빈스는 1884년 폐선 선체를 사서 항구에 정박시킨 후 사무실로 이용하였다. 이후 상하이-나가사키-부산-제물포를 연결하는 항로도 개설하였으나 교역 사업을 통해서 별다른 이익을 보지는 못하였다. 광산의 경우 경기도 용평(龍坪) 만세교(萬世橋) 사금장(砂金場) 채굴권을 획득하고, 강원도 김화(金化)와 금성(金城) 등지의 금광 채굴에도 관여하였다. 그러나 광산 사업 역시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결국 1884년 12월 제물포 지부를 철수하면서 화물 증기선 운항도 모두 중단시켰고, 1885년 영국의 거문도 점령 이후에는 광산 사업에서도 손을 뗀 것으로 보인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