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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은행

제목 한성은행
한자명 漢城銀行
유형
시대 근대
관련국가 대한제국, 일본
유의어
별칭•이칭

[정의]

1897년(고종 34)에 설립된 조선인 은행

[내용]

한성은행은 김종한(金宗漢) 등 고위 관료들이 중심이 되어 설립한 은행으로 정부로부터 국고금 취급권을 획득하고 삼남 지방의 공주, 전주 등지에 지점을 설치하여 결호전(結戶錢)을 수송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그러나 은행 직원이 조세금을 수송하는 과정에서 상인들에게 대출하여 조세금이 연체, 미납되는 폐단이 발생하자, 정부는 1898년 한성은행의 조세금 취급을 정지시켰다. 이후 별다른 영업 기반을 확보하지 못하는 가운데 대한천일은행으로부터 10여 차례 대출을 받는 등 영업 부진에 빠졌다. 1903년에는 불입자본금을 20만 원으로 증액하고 은행명을 공립 한성은행으로 개칭하였다. 일본은 이용익이 러시아에 차관 교섭하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 대한제국 정부에 차관 제공을 약속했고, 한성은행을 차관 공여 창구로 삼았다.

이때 계약된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한성은행 사장과 제일은행 서울지점장은 차관 500만 엔을 필요에 따라 몇 차례로 나누어 지불하고, 차입할 때마다 한성은행은 거기에 상당하는 담보를 넣고 따로 계약을 체결할 것, 그리고 이자는 연리 6%에 10년 내에 상환할 것, 나아가 차관 공여 업무를 위해 한성은행에 일본인 1명을 고용할 것과 한성은행이 자금을 차입할 때에는 반드시 제일은행과 협의할 것 등을 규정했다. 한성은행은 이와 같은 차관 계약 직후 제일은행으로부터 3만 5천 원을 대출받아 영업을 지속할 수 있었다.

1905년 화폐 재정 정리로 금융 공황이 발생하자 한성은행은 제일은행으로부터 15만 원의 대부를 받고, 제일은행은 한성은행 주식 3,000주 가운데 800주를 인수하는 등 제일은행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1906년 「은행조례」에 의해 주식회사 한성은행으로 개칭되었다.

▶ 관련자료

ㆍ공립한성은행(公立漢城銀行)
ㆍ한성은행(漢城銀行)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