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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 전기 회사

제목 한성 전기 회사
한자명 漢城電氣會社
유형
시대 근대
관련국가 대한제국, 미국
유의어
별칭•이칭

[정의]

대한제국기 미국의 기술을 도입해 설립된 최초의 전기 회사.

[내용]

서울에 전등과 전차 설치를 희망하던 고종(高宗, 재위 1863~1907)은 한성판윤 이채연(李采淵)의 중개와 알렌(Horace Newton Allen)의 추천으로 콜브란(Henry Collbran)과 접촉하게 되었다. 원래 황실은 콜브란과 연합하는 합자 회사(合資會社)를 구상하였지만, 러시아의 방해를 염려해 조선인이 청원하는 형식으로 한성 전기 회사를 설립하였다. 이후 이채연이 사장이 되어 콜브란 측과 협의를 통해 한성부(漢城府)에 전차, 전등, 전화를 공급하기로 하였다.

한성 전기 회사는 공사비 상당 부분을 콜브란에게 빌렸기 때문에 회사의 모든 재산 및 특허권을 콜브란에게 신탁하였고, 별도로 전기철도 운영 계약을 체결해 콜브란에게 경영을 위임하였다. 명목상으로는 한국인 민간 회사였지만, 실상은 황실과 미국 자본의 합자 회사에 가까웠다.

콜브란은 1900년 채무 상환 만기일을 연장해 주는 대가로 각종 이권을 확보해 경영 확장을 도모하였다. 송도(松都)까지 경편철도(輕便鐵道) 부설, 청량리선의 연장, 도로 건설, 수도 설비 부설에 대한 사업권을 따냈고, 황실 소요 물품을 조달하는 일을 맡으며 황실의 신임을 받았다. 이를 바탕으로 은행 설립권까지 확보하였다.

이러한 콜브란의 사업 확장에 대해 일본과 황실 측근 세력들이 견제하였다. 친미파들이 한성 전기 회사를 이용해 미국에 각종 이권을 넘겨주고 있다고 판단한 이용익(李容翊, 1854~1907)은 콜브란의 사업을 저지하고 한성 전기 회사를 장악하려 하였다. 이 때문에 콜브란의 사업은 도로 건설을 제외하고 모두 좌절되었다. 이에 콜브란은 1902년 8월에 다시 채무 상환 만기일이 돌아오자, 이번에는 거액의 채무 상환을 요구하였고, 대한제국 정부는 무리한 요구라며 거절하였다. 그러자 일본이 차관을 제공하여 콜브란에 대한 채무를 청산하게 하고 이를 빌미로 한성 전기 회사를 장악하려고 하였다. 여기에 이용익도 개입하여 한성 전기 회사를 압박하면서 사태는 점점 악화되어 갔다. 결국 회사 채무를 매개로 콜브란이 경영권은 물론 소유권까지 차지하게 되면서 한성 전기 회사는 1904년 7월 한미 합자(韓美合資)의 한미 전기 회사(韓美電氣會社)로 개편되었다. 그 뒤 1909년 콜브란이 회사를 일본의 국책 회사인 일한 와사 회사(日韓瓦斯會社)에 매도하면서 사라지게 되었다.

▶ 관련자료

ㆍ한성 전기 회사(漢城電氣會社)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