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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광문회

제목 조선 광문회
한자명 朝鮮光文會
유형
시대 근대
관련국가
유의어
별칭•이칭

[정의]

1910년 최남선(崔南善, 1890~1957)의 주도로 설립된 고전 간행 및 사전 편찬 모임.

[내용]

조선 광문회는 출판사인 신문관(新文館)을 경영하며 『소년』 잡지를 간행하던 최남선의 주도로 1910년 10월에 설립된 고전 및 사전 편찬 모임이었다. 조선 광문회는 “조선 구래의 문헌 도서 가운데 중대하고 긴요한 것을 수집, 편찬, 개간(開刊)하여 귀중한 문서를 보존 전포(傳布)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밝혔다. 비록 식민지가 되었지만 한민족이 가지고 있는 역사와 전통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조선 광문회는 처음에는 180여 종의 고전을 중간(重刊)하고자 『동국통감』, 『열하일기』를 필두로 간행 사업을 시작하였지만, 실제로 간행된 책은 20여 종에 지나지 않았다. 고전 간행 활동이 잘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제대로 된 고서를 입수⋅구입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과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재정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조선 광문회는 재정난으로 1915년 이후부터는 고전 간행 활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 광문회는 사전 편찬 사업도 진행하였다. 사전 편찬은 두 방향에서 추진되었다. 하나는 한글 사전인 『조선어자전(朝鮮語字典)』의 편찬이었고, 다른 하나는 한자 자전인 『신자전(新字典)』의 편찬이었다. 한글 사전인 『조선어자전』은 주시경(周時經)의 주도하에 편찬 중이던 한글 사전인 『말모이』를 근간으로 하였다. 주시경 사후 주시경의 제자였던 김두봉(金枓奉)과 이규영(李奎榮)이 최남선과 손잡고 1914년부터 『말모이』를 현대성과 실용성이 더욱 강조된 형태의 『조선어자전』으로 개편하였다. 그러나 『조선어자전』은 끝내 출판되지는 못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어자전』은 한국인이 주도한 최초의 한글 사전 편찬 작업이었다는 역사적 의의를 가진다. 또한 이후 한글 사전 편찬에 중요한 밑바탕이 되었다.

조선 광문회는 국어와 역사를 연구하는 데 가장 기초 자료인 고전 간행과 사전 편찬을 추진함으로써 1910년대 국학 연구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하였다.

▶ 관련자료

ㆍ조선 광문회(朝鮮光文會)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