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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리

제목 삼천리
한자명 三千里
유형
시대 근대
관련국가
유의어
별칭•이칭

[정의]

1929년 6월 창간된 월간 대중 잡지.

[내용]

『삼천리』는 1929년 대중지를 표방하며 창간한 월간 잡지였다. 편집 및 발행은 김동환(金東煥)이 맡았다. 김동환은 함경북도 경성(鏡城) 출신으로 일본 동양대학을 수료한 후에, 동아일보, 시대일보, 중외일보를 거쳐 조선일보에서 기자로 활동한 인물이었다. 기자 출신의 김동환은 대중의 취향을 잘 이해하고 있었고, 이런 그의 성향이 잡지에 고스란히 투영되었다. 『삼천리』는 창간호의 사고(社告)에서 잡지의 발행 목적에 대해서, “1. 훨씬 값이 싼 잡지를 만들자. 2. 누구든지 볼 수 있고 또 버릴 기사라고는 없는 잡지를 만들자. 3. 민중에게 이익이 되는 좋은 잡지를 만들자”라고 하였다.

삼천리는 무겁고 어려운 논설이나 학술 논문을 가능한 한 배제하고 대중의 흥미를 끌 수 있는 가십(gossip) 기사에 주력하였다.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돈 십만 원이 있다면’ 등 독특한 주제에 대한 설문 조사 혹은 인터뷰 등을 활용하여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였다. 잡지의 생명력이 길지 않았던 당시의 상황에서 이러한 『삼천리』의 대중지향성은 『삼천리』의 생명력을 장기간 유지하게 했던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삼천리』도 1937년 일제가 중일 전쟁을 일으킬 무렵부터 친일적 논조가 잡지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제의 침략 전쟁을 옹호하고 지원하며, 식민 지배를 합리화하는 글들이 점차 많이 실리기 시작했다. 특히 김동환이 1942년 3월 대동아사(大東亞社)를 설립하고, 5월 『삼천리』의 제호를 『대동아』로 변경하면서 잡지는 노골적인 친일 잡지로 변하였다. 『대동아』는 일제의 전쟁 수행을 옹호하고 지원하는 내용을 담은 잡지로 1943년 3월호까지 발행되었다.

해방 이후 김동환은 친일 행적과 관련하여 1949년 2월 반민특위에 자수하였고, 재판을 받았다. 이 와중에도 김동환은 1948년 5월 『삼천리』를 속간하였고, 속간한 『삼천리』는 1950년 6월까지 20호가 더 발행되었다.

▶ 관련자료

ㆍ삼천리(三千里)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