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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제 동맹

제목 나제 동맹
한자명 羅濟同盟
유형
시대 삼국 시대
관련국가 백제, 신라
유의어
별칭•이칭

[정의]

5세기 대 고구려의 남진에 대항하여 백제와 신라가 맺은 군사 동맹.

[내용]

1. 동맹의 성립

고구려는 광개토왕(廣開土王, 재위 391~413)과 장수왕(長壽王, 재위 413~491) 대에 서북 방면으로 영토를 크게 확장하였다. 하지만 북위(北魏)의 등장으로 북방으로의 영토 확장이 어려워지자 한반도 남쪽으로의 진출을 꾀하였다.

백제는 4세기 근초고왕(近肖古王, 재위 346~375) 대 이래로 한반도의 주도권을 두고 고구려와 대립해 왔다. 371년(백제 근초고왕 26년, 고구려 고국원왕 41년)에는 평양에서 고구려 고국원왕(故國原王, 재위 331~371)을 전사시키는 등 우위를 점하기도 하였으나, 396년(고구려 광개토왕 6년, 백제 아신왕 5년) 광개토왕의 원정으로 큰 피해를 입으면서 이후 열세에 몰리게 되었다. 이에 백제는 가야, 왜(倭), 신라 등과 협력 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시도를 계속하였다.

한편 신라는 내물 마립간(奈勿麻立干, 재위 356~402) 대부터 고구려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되었으나, 눌지 마립간(訥祗麻立干, 재위 417~458)이 즉위한 뒤부터 고구려의 내정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해 힘썼다. 이러한 신라와 백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433년(백제 비유왕 7년, 신라 눌지 마립간 17년) 양국 사이에 동맹 관계가 성립되었다.

2. 동맹의 경과

나제 동맹(羅濟同盟)의 결성이 고구려의 남진을 저지하는 데 즉각적인 효과를 발휘한 것은 아니었다. 백제는 475년(고구려 장수왕 63년, 백제 개로왕 21년) 고구려 장수왕의 공격으로 수도 한성이 함락되었고, 개로왕(蓋鹵王, 재위 455~475)이 사로잡혀 죽임을 당하였다. 신라 역시 481년(고구려 장수왕 69년, 신라 소지 마립간 3년)에 경주(慶州) 인근까지 고구려군이 남진하는 등의 위협에 시달렸다. 이러한 고구려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하여 양국은 서로 원군을 파견하였으며, 493년(백제 동성왕 15년, 신라 소지 마립간 15년) 백제 동성왕(東城王, 재위 479~501)과 신라 왕녀가 결혼하는 혼인 동맹을 맺기도 하였다. 그 결과 고구려의 추가적인 남진을 저지하는 데 성공하였다.

안원왕(安原王, 재위 531~545)이 죽은 뒤 왕위 계승 분쟁으로 고구려의 내정이 어지러워진 틈을 타, 551년(고구려 양원왕 7년, 백제 성왕 29년, 신라 진흥왕 12년) 백제와 신라는 가야와 왜의 원군을 포함한 나제 동맹군을 결성하여 백제가 고구려에게 빼앗겼던 한강 유역을 수복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후 백제가 한강 하류 6개 군을, 신라가 상류 10개 군을 분할 점령하였는데, 이는 나제 동맹의 최대 성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553년 신라가 백제를 공격하여 한강 유역을 독점 하면서 백제와 신라의 동맹은 깨지고 말았다. 이후 백제 성왕(聖王, 재위 523~554)이 신라를 공격하던 와중에 신라군에게 죽임을 당하면서 양국의 동맹은 완전히 끝이 났다.

[의의]

나제 동맹을 통해 협력 관계를 구축한 신라와 백제는 삼국 중에서 전력상 우위에 있던 고구려에 효과적으로 대응함으로써 삼국 사이에 힘의 균형을 맞추는 데 성공하였다. 특히 이 과정에서 신라는 고구려의 압박에서 벗어나 발전의 기틀을 마련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삼국 통일의 위업을 달성할 수 있었다.

▶ 관련자료

ㆍ나제 동맹(羅濟同盟)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