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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하시중

제목 문하시중
한자명 門下侍中
유형
시대 고려 시대
관련국가 고려
유의어
별칭•이칭

[정의]

고려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의 장관으로 최고위 관직.

[내용]

982년(성종 1) 내사문하성(內史門下省)을 설치하면서 처음으로 문하시중(門下侍中)을 두었으며, 문종(文宗, 재위 1046∼1083) 대 내사문하성이 중서문하성으로 개칭되면서 중서문하성의 장관을 일컫게 되었다. 종1품으로 정원은 1명이며, 같은 종1품직인 중서령(中書令), 상서령(尙書令)과 함께 재신(宰臣)으로 일컬어졌다. 고려 시대 중서령이나 상서령은 일반적으로 명예직이나 증직(贈職)인 경우가 많아, 문하시중이 수상에 해당하는 최고위 관직으로 기능하였다. 1061년(문종 15)에는 관제 개혁으로 문하시랑(門下侍郞)이라고 불렸다.

1275년(충렬왕 1) 원(元)의 간섭으로 중서문하성과 상서성을 병합하여 첨의부(僉議府)로 격하되면서, 문하시중의 명칭도 첨의중찬(僉議中贊)으로 바뀌고 좌⋅우첨의중찬을 두었다. 이후 첨의부의 개칭과 관제 개편에 따라 도첨의시중(都僉議侍中), 도첨의정승(都僉議政丞) 등으로 명칭을 바꾸고 인원도 1명으로 줄였다. 1356년(공민왕 5)에는 반원 운동으로 관제가 전면적으로 복구되면서 중서문하성이 부활되었고 다시 문하시중이라 하였다. 그러나 이후에도 관제 개편으로 첨의정승, 첨의시중 등으로 명칭이 바뀌곤 하였다. 1369년(공민왕 18)에는 도첨의부가 문하부(門下府)로 개편되면서 다시 문하시중이라 하였고, 문하좌시중, 문하우시중 2명을 두었다. 창왕(昌王, 재위 1388~1389) 대 왼쪽을 더 우대하는 원칙에 따라 좌시중은 문하시중으로, 우시중은 수문하시중(守門下侍中)으로 각각 바뀌었다.

조선 시기에 들어 문하부가 의정부(議政府)에 병합되면서 좌시중과 우시중은 의정부의 좌의정과 우의정으로 계승되었다.

[의의]

고려 시기에 실질적으로 정무를 담당하는 관직 중 최고위 관직이었다.

▶ 관련자료

ㆍ문하시중(門下侍中)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