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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추원

제목 중추원
한자명 中樞院
유형
시대 고려 시대
관련국가 고려
유의어
별칭•이칭

[정의]

고려 시기에 왕명을 출납하고 군사 기무를 관장하며 임금의 숙위(宿衛) 등을 담당한 관부.

[내용]

991년(성종 10) 한언공(韓彦恭)의 건의에 따라 송(宋)의 추밀원(樞密院) 제도를 참조하여 설치하였다. 왕명을 출납하고 국왕을 숙위하며 군국 기무를 담당하는 등 국정의 중요한 정무를 관장하는 핵심적인 중앙 관청으로,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과 함께 양부(兩府)로 불렸다.

중서문하성이 상층 관원인 재신(宰臣)과 하층 관원인 낭사(郎舍)로 구분되는 것처럼, 중추원도 상층 관원인 추신(樞臣)과 하층 관원인 승선(承宣)으로 구분되었다. 추신은 중서문하성의 재신과 함께 재추(宰樞)라고 불리며 국정을 의논하여 결정하는 일을 하였다. 승선은 왕명 출납을 담당하는 것이 주요 업무였다.

11세기 말에 추밀원으로 개칭하였으나 업무에는 큰 변동이 없었다. 1275년(충렬왕 1) 밀직사(密直司)로 개칭되어 중서문하성을 개칭한 첨의부(僉議府)보다 관부의 격이 낮아지면서, 이전과 같은 양부의 한 축으로서 위상을 갖지는 못하였다. 이후 일시 폐지되기도 하는 등 변동이 심했으나, 1310년(충선왕 2) 밀직사의 격을 높여 첨의부와 함께 다시 양부로 칭하게 되었고, 이후 1356년(공민왕 5) 반원 개혁 당시 추밀원으로 명칭을 복구하였다가 1362년(공민왕 11) 다시 밀직사로 바꾸었다.

고려 후기에 명칭과 격이 자주 바뀌면서 기관의 성격에도 변화가 생겼다. 전기의 중추원은 명목상으로는 군국 기무도 담당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군정에 미치는 영향력은 직접적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후기에는 군정까지 직접적으로 총괄하였는데, 충선왕(忠宣王, 재위 1298, 1308∼1313) 대 밀직사의 격이 높아져 첨의부와 함께 양부로 지칭되던 시기부터 그러한 기능상의 변화가 두드러졌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 초 관제를 개편하며 중추원의 여러 기능 중 군정은 병조(兵曹)로 이관되고 왕명 출납은 승정원(承政院)에서 담당하면서, 중추원은 일종의 명예직을 위한 기관으로 변화하였다.

[의의]

고려 시기에 중앙 정치의 핵심 기구로 왕명 출납 등을 관장하였으며, 상층 관원은 추신으로 국정 운영을 위한 주요 의사 결정에 참여하였다.

▶ 관련자료

ㆍ중추원(中樞院)
ㆍ밀직사(密直司)
ㆍ추밀원(樞密院)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