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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

제목 서인
한자명 西人
유형
시대 조선 시대
관련국가 조선
유의어 서당(西黨)
별칭•이칭

[정의]

선조(宣祖, 재위 1567~1608) 대 심의겸(沈義謙, 1535~1587)을 지지하는 사람들로 형성되어 이후 이이, 성혼, 김장생의 문인들이 참여한 붕당.

[내용]

선조 대 이조 전랑직 임명을 두고 김효원(金孝元, 1542~1590)과 심의겸이 대립하였는데, 이 일을 계기로 조선 최초의 붕당이 형성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1575년경(선조 8) 심의겸과 김효원의 대립이 표면적인 동기가 되었지만, 그 배경에는 국정 운영을 둘러싸고 각각 다른 견해를 바탕으로 사림 세력이 나뉘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 중 서인(西人)은 심의겸의 입장을 지지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졌다. 당시 심의겸의 집이 서울의 서쪽에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명칭이 붙여졌다고 한다. 서인은 당시 조정에서 비교적 연륜이 있는 관료들로 구성되었고, 이후에는 이이(李珥), 성혼(成渾), 김장생(金長生)의 학문을 계승한 경기 지역 학자들이 중심이 되었다. 이들은 사상적으로는 주자의 사상을 고수하려는 성향이 강하였고, 명에 대한 의리를 지켜야 한다는 대명의리론(對明義理論)을 주장하였다.

붕당이 형성된 직후에는 서인은 동인에 비하여 열세였으나 1589년(선조 22)에 일어난 정여립의 옥사를 계기로 정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이후 선조 말년과 광해군(光海君, 재위 1608~1623) 대에는 동인에서 갈라져 나온 북인(北人)이 집권하면서 정권에서 배제되었다가 인조반정을 통해 조정을 장악하게 되었다. 이후 조선의 정국은 서인이 줄곧 집권하였는데, 숙종(肅宗, 재위 1674~1720) 대에 이르러 송시열과 윤휴의 반목, 예송 논쟁에 대한 입장 차이, 척신에 대한 태도 등 복합적인 이유로 노론과 소론으로 나뉘어졌다. 이후에는 노론이 주로 정권을 장악하였고, 남인(南人)과 소론이 견제하는 형국으로 정치가 전개되었다.

▶ 관련자료

ㆍ서인(西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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