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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림

제목 사림
한자명 士林
유형
시대 조선 시대
관련국가 조선
유의어 사류(士類), 사인(士人)
별칭•이칭

[정의]

조선 성종(成宗, 재위 1469~1494) 대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한 신진 사류(新進士類)로 훈구(勳舊) 대신들의 부정부패를 비판하고 도덕성과 근본주의적 성리학 이념을 강조했던 정치 집단.

[내용]

조선 초기에 사림이란 용어는 사대부(士大夫)⋅사인(士人)⋅사류(士類)⋅사족(士族) 등과 비슷한 용례로 사용되었다. 당시에는 사족이나 사대부란 용어가 사(士) 집단을 대표하는 용어로 자주 사용되었다.

사림이 새로운 정치적 성격의 집단으로 지칭되기 시작했던 것은 성종 대부터였다. 이들은 소위 훈구 대신이라 지칭되었던 원훈(元勳) 집단을 공격하는 동시에 도덕성과 근본주의적 성리학 이념을 강조하며 결집했다. 이들의 정치 활동은 대간(臺諫) 활동을 통해 보다 직접적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이들은 ‘사림파(士林派)’라고 불리기도 한다. 사림들은 자신들을 ‘공론(公論)’의 대변자로 자처하며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했다.

성종 대부터 사림파의 대두를 상징하는 현상은 바로 대간들의 원로대신들에 대한 집요한 탄핵과 근본주의적 성향이었다. 이는 당시 대간들이 사림 집단을 대표했던 지방에 근거지를 두고 있던 사대부 집단의 정서와 이해를 반영하는 활동을 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조선 초기 개혁 과정에서 소외되어 잠재적인 불만을 쌓아두고 있었지만 세조(世祖, 재위 1455~1468) 대까지는 이를 직접적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러한 불만이나 결집의 움직임이 성종 대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울러 성종은 세조의 재위기부터 국정에 깊이 관여했던 훈구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사림을 적극적으로 등용했던 것으로 설명된다.

사림은 성종에서 중종 대를 거치면서 자신들의 역할과 정치적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확대했다. 하지만 이들의 영향력 확대는 훈구 대신들과는 물론 국왕과도 국정 운영 방식을 둘러싸고 대립하는 양상을 보였다. 이러한 충돌 양상은 결국 사화(士禍)라는 정치적 사건의 원인이 되었다. 동시에 사림은 사화를 통해 조정이나 재야에서 성리학적 공도(公道)를 실현하려는 정치 집단의 성격을 공인 받게 되었다. 한편 새로운 연구들에서는 사림과 훈구를 대비되는 정치 세력으로 표현하는 설명 방식과 용어의 개념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 관련자료

ㆍ사류(士類)
ㆍ사림(士林)
ㆍ사림파(士林派)
ㆍ사인(士人)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