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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의전

제목 육의전
한자명 六矣廛
유형
시대 조선 시대
관련국가 조선
유의어 6부전(六部廛), 6분전(六分廛), 6의전(六矣廛), 6장전(六長廛), 6조비전(六調備廛), 6주부전(六主夫廛), 6주비전(六注比廛), 육부전(六部廛), 육분전(六分廛), 육장전(六長廛), 육조비전(六調備廛), 육주부전(六主夫廛), 육주비전(六注比廛)
별칭•이칭

[정의]

조선 후기 서울에서 국역(國役)을 부담하는 비율이 가장 높은 여섯 종류의 시전.

[내용]

육의전은 국역 부담이 높은 여섯 개의 시전(市廛)을 말한다. 그 구성은 시기에 따라 조금씩 달랐지만, 옷감(비단, 명주, 모시 등), 종이, 어물 등을 취급하는 점포들이 포함되었다. 육의전을 구성하고 있던 시전은 국초부터 도성을 중심으로 활동한 상인들이었다. 도성의 시전은 국가에 여러 가지 부담을 지는 대신 독점적으로 상업 활동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얻은 상인들이었다. 특히 물종에 따라 기본적으로 하나의 시전을 운영하여 독점하는 것이 원칙이었기 때문에 시전은 안정적으로 상업적 특권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양란 이후 신설되는 시전이 늘어나고 평시서(平市署)에서 시전을 규찰하는 업무도 한계에 봉착하게 된다. 이에 시전 상인 자체적으로 규율할 수 있는 체제가 필요하였다. 따라서 1691년(숙종 17) 형조(刑曹)의 금제(禁制) 조항에 시전 상인 가운데 6명을 행수(行首)로 정하여 시전을 자체적으로 검찰하도록 하였다. 이 과정에서 시전은 육의전을 중심으로 국역을 부담하는 비율을 조정하였고 국가의 국역 분담 체제가 완성되었다.

육의전이 성립한 시기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다. 조선 초기부터 창설되었다는 설부터 1637년(인조 15)에 중국에 보내는 세폐(歲幣)와 방물(方物)을 분담하기 위해 성립되었다는 설, 그리고 양란 이후 국가적인 재건이 이루어지던 17세기 초반 무렵으로 보는 설도 있다. 육의전이 생겨난 시기와는 별도로 육의전은 난전(亂廛)을 자체적으로 금지하는 역할을 맡았기 때문에 금난전권이 형성되던 시기와 같이하여 역할이 확대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육의전이 형성되면서 시전은 자체적으로 금난전권을 시행하였고 난전에 대항하여 시전 상인들의 이익을 대변하려고 노력했다.

▶ 관련자료

ㆍ육의전(六矣廛)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