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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 집회

제목 보은 집회
한자명 報恩集會
유형
시대 근대
관련국가 조선
유의어 보은 취회(報恩聚會)
별칭•이칭

[정의]

1893년(고종 30) 3~4월에 동학교단이 종교의 자유와 척왜양(斥倭洋)의 기치를 내걸고 충청도 보은에서 개최한 집회.

[내용]

1893년 2월에 교조 최제우(崔濟愚, 1824~1864)의 복권을 요구했던 서울 복합 상소(伏閤上疏) 운동이 실패하자, 정부는 동학을 강경하게 탄압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동학 지도부는 1893년 3월에 충청도 보은에서 대규모 집회를 개최했다. 전국에서 2만여 명의 교도가 모인 보은 집회에서 동학교단은 이전까지의 교조 신원 운동에서 더 나아가 ‘척왜양창의(斥倭洋倡義)’의 기치를 세우고, 탐관오리와 세도가를 비판하였다. 이에 정부는 백성의 원성을 사고 있던 충청 감사 조병식을 파직시키는 한편, 어윤중(魚允中)을 양호선무사(兩湖宣撫使)로 임명해서 보은으로 급파했다. 보은에 도착한 어윤중은 고종(高宗, 재위 1863~1907)의 포고문을 발표하고 동학 지도부에 대한 회유와 설득을 진행했다. 그 결과 보은 집회는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4월 3일에 해산되었다.

[의의]

동학교도들이 교조 신원이라는 종교적 목적에서 더 나아가 반외세의 정치적 지향점을 드러낸 보은 집회는 1894년 동학 농민 운동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 관련자료

ㆍ보은 집회(報恩集會)
ㆍ동학 농민 운동(東學 農民 運動)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