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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영도

제목 절영도
한자명 絶影島
유형
시대 근대
관련국가 조선~대한제국, 일본, 러시아
유의어
별칭•이칭

[정의]

부산광역시 영도구 지역을 이루고 있는 섬.

[내용]

이곳에서 자란 말이 워낙 빨라 그림자[影]가 끊어져[絶] 보인다는 의미로 절영도라고 칭했다. 고려 시대 이전에는 목장이 있었고 임진왜란 때는 일시적으로 무인도화되기도 하였다. 임진왜란 이후 국교 재개 교섭 때는 임시 왜관(倭館)을 설치하여 6년간 사용하였다. 조선 시대에는 동래부(東萊府) 소속이었다.

전략적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어 개항 이후 러시아 및 일본이 이 섬을 두고 외교적 문제를 여러 차례 일으켰다. 1879년(고종 16) 일본 상인들이 이곳에 창고를 짓고 활동하는 문제로 조선과 갈등을 일으켰다. 1889년에는 러시아가 함대의 연료 보급을 위한 저탄소(貯炭所) 시설 설치를 요구했지만 조선 정부가 거절한 바 있었다. 1895년 조선 정부도 절영도의 전략적 위치를 이용하고자 외국인의 불법 점거를 허가하지 않겠다고 통고했다가 각국의 거센 반발에 직면한 일도 있었다. 1897년(고종 34) 8월부터 러시아는 또다시 저탄소 설치를 위한 절영도 조차(租借)를 요구하였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국내에서 거센 반대 여론이 일어나고, 독립 협회는 본격적으로 반러시아 운동을 벌였다. 결국 당시 대한제국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러시아는 조차의 포기뿐만 아니라 다른 이권에서도 후퇴하게 되었다. 1904년 러일 전쟁의 시작과 함께 일본은 절영도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임시 기지를 설치하기도 하였다.

절영도는 일제 강점기인 1914년 부산 소속으로 재편되었고, 해방 이후 행정 구역을 정비하면서 절영도를 두 글자로 줄여 영도로 부르게 되었다.

▶ 관련자료

ㆍ절영도(絶影島)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