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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의병

제목 정미의병
한자명 丁未義兵
유형
시대 근대
관련국가 대한제국, 일본
유의어
별칭•이칭

[정의]

1907년 한일 신협약 체결 이후부터 1910년까지 벌어진 무장 항일 구국 투쟁.

[내용]

1907년 일제의 고종 강제 퇴위, 한일 신협약 강제 체결, 군대 해산 등으로 반일 감정이 고조되었다. 특히 해산 당한 군인들이 서울과 지방에서 시위⋅무장 투쟁을 벌였고, 이들의 활동은 전국 각지의 의병 활동을 더욱 고취하여 전국적인 의병 항쟁으로 확대되었는데, 이를 정미의병이라 한다. 정미의병은 해산된 군대를 대거 흡수하여 더욱 조직적인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정미의병의 항전은 1907년 12월부터 1908년 5월 사이에 있었던 13도 의병연합군의 서울 진공 작전을 기점으로 최고조에 달하였다. 전라, 충청, 경기, 강원, 평안, 함경도 등 13도 의병 부대가 연합하여 서울 탈환을 목표로 삼았다. 비록 서울 진공 작전은 실패하였지만 남쪽으로는 제주도로부터 북쪽으로는 간도⋅연해주에 이르기까지 전국 각지에서 의병 투쟁이 전개되었다. 특히 1908년에는 강원도 의병, 1909년에는 전남 의병이 가장 강력한 투쟁을 벌였다. 일제의 잔학한 탄압을 피해 초기 대부대의 형태에서 후기 점차 소규모 유격 전투의 형태로 전환되어 갔다.

격렬한 의병 전쟁이 일어나자 일제는 대규모 군대를 한국에 파견하여 1909년 9월 남한 대토벌 작전(南韓大討伐作戰)을 개시하였고, 1910년 3월에는 황해도 및 강원도에 대한 토벌 작전을 시행하였다. 조직적이고 무자비한 일제의 토벌로 인하여 한국 내 의병 세력은 큰 타격을 받았고, 살아남은 세력은 해외로 근거지를 옮겨 일제 강점기에도 무장 투쟁을 지속하였다.

▶ 관련자료

ㆍ의병 전쟁(義兵戰爭)
ㆍ의병(義兵)
ㆍ의병장(義兵將)
ㆍ정미의병(丁未義兵)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