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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러 밀약

제목 조러 밀약
한자명 朝露密約
유형
시대 근대
관련국가 조선, 러시아, 청(淸)
유의어 조로 밀약(朝露密約), 한러 밀약(韓露密約), 한로 밀약(韓露密約)
별칭•이칭

[정의]

1885년(고종 22)과 1886년(고종 23) 두 차례에 걸쳐 조선과 러시아 사이에 전개된 비밀 협상.

[내용]

1884년 갑신정변 이후 청은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려 했고, 일본 역시 이에 맞서 조선에 대한 지분 확보를 시도했다. 한편, 청의 지나친 간섭 정책에 불안감을 느낀 고종(高宗, 재위 1863~1907)은 이를 견제하기 위해 러시아에 접근하였고, 러시아는 부동항 확보를 위해 여기에 화답하였다. 따라서 러시아 정부는 1885년 6월 스페이에르(Alexei de Speyer)를 조선에 파견하여 묄렌도르프(Paul George von Mӧllendorf, 1848~1901)와 협상하도록 하였다. 협상의 요점은 러시아 군사 교관의 파견과 열강의 보증에 의한 조선 중립화였다.

고종은 러시아 대표 스페이에르를 접견하고 군사 교관의 파견을 요청하였으나 김윤식(金允植)이 위안스카이(袁世凱, 1859~1916)에게 이를 알리면서 청의 반대로 러시아 군사 교관의 영입은 실패로 끝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종은 스페이에르에게 밀사를 보내서 군사 교관의 파견을 다시 요청하였지만, 이 역시 영⋅청⋅일의 압력으로 묄렌도르프가 해고되면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를 1차 조러 밀약이라고 한다.

조선과 러시아의 접근은 1885년 10월 베베르(Karl Ivanovich Wäber, 1841~1910)가 공사로 조선에 오면서 다시 시작되었다. 당시 민영익(閔泳翊)은 1886년 8월 고종의 명령으로 여러 번 베베르를 방문하여 청을 견제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이 와중에 8월 9일 ‘조선의 독립을 유지하기 위해 러시아의 보호를 요청한다’는 고종의 서한을 민영익이 베베르에게 전달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를 2차 조러 밀약이라고 한다.

위안스카이는 이런 사실을 바로 이홍장(李鴻章)에게 보고하였고, 이홍장은 주청 러시아 공사에게 이 사건에 대해 문의하였다. 그러나 러시아 정부는 이를 부인하였고, 고종도 이를 부인하였으며, 다른 외국인들 역시 이 서신의 신빙성에 의문을 표시하였다. 하지만 위안스카이는 이를 기회로 고종을 유폐시키고 대원군의 손자인 이준용(李埈鎔)을 추대하려고 하였다. 이 사건을 통해 당시 조선에 대해 청이 가진 영향력이 얼마나 강력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 관련자료

ㆍ제1차 조러 밀약(第一次朝露密約)
ㆍ제2차 조러 밀약(第二次朝露密約)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