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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추원

제목 중추원
한자명 中樞院
유형
시대 근대
관련국가
유의어
별칭•이칭

[정의]

1910년 설립된 친일 협력자로 구성된 조선 총독의 자문 기관.

[내용]

원래 중추원은 대한제국 의정부에 딸린 기구로 내각의 자문 기관이었지만, 일제는 중추원을 폐지하지 않고 식민 통치의 기구로 활용하였다. 일제는 강제 병합 직후인 1910년 10월 기존의 중추원을 조선 총독의 자문에 응하는 기관으로 재설립 하였다. 중추원의 설치는 기본적으로 일제 강점 과정에서 일제에 협력하였던 사람들을 예우하기 위한 것으로, 일제에 대한 협력의 공로로 일본 정부로부터 작위를 받은 자나 유력한 친일 인사를 끌어들여 중추원의 구성원으로 삼았다. 중추원은 의장 1명, 부의장 1명, 고문 15명, 찬의 20명, 부찬의 35명으로 구성되었으며, 의장은 총독부의 정무총감이 맡았다. 1910년대 중추원은 총독에 대한 자문 기관으로서의 활동은 거의 수행하지 못하고, 총독부의 시정 방침이나 주요 정책을 듣고 이를 일반에 홍보하는 역할만을 담당했다.

그러나 조선 총독부의 필요에 따라 관제(官制) 개정이 이루어지면서 중추원도 일정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1915년 개정에서는 중추원의 기능에 구관습(舊慣習) 및 제도 조사가 추가되면서 식민 통치의 기초 자료를 만드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3⋅1 운동 이후에는 조선 총독부가 ‘문화 정치’를 표방하면서 중추원의 자문 기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1921년 중추원은 관리의 명칭과 수를 고문 5명, 참의 65인으로 바꾸고 매년 중추원 회의를 개최하기 시작했다. 이후 중추원은 사회 관습 조사, 사회 교화 사업, 농촌 진흥 운동, 황민화 정책 등 조선 총독부의 중요사업에 대한 자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결론적으로 조선 총독부 중추원은 일제의 식민 통치를 원활하게 하기 위한 보조 기구로서의 역할을 수행한 단체였다.

▶ 관련자료

ㆍ조선 총독부(朝鮮總督府의 設置)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