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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정척사 사상

제목 위정척사 사상
한자명 衛正斥邪思想
유형
시대 근대
관련국가 조선, 일본, 프랑스
유의어 위정척사론(衛正斥邪論), 척사위정론(斥邪衛正論), 척사위정 사상(斥邪衛正思想)
별칭•이칭

[정의]

외세에 대항하여 성리학적 가치를 지키자는 운동.

[내용]

‘위정척사(衛正斥邪)’는 바른 것을 지키고 사악한 것을 배척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본래 위정척사론은 남송(南宋) 대 사상적으로는 불교와 정치적으로는 여진족에게 위협을 받던 시기 주희(朱熹, 1130~1200)에 의해 정립된 이념이다. 조선의 위정척사론은 조선 후기 서학(西學)이나 서양 문물, 외세의 위협을 배척하고 성리학적 가치를 지키려는 사상적 운동을 말한다.

문화와 야만, 정통과 이단을 구별하는 화이의식(華夷意識)에 기반을 둔 위정척사론에 따르면 서양 문물은 사악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들은 조선의 올바른 성리학적 가치를 어지럽히고 조선의 존립을 뒤흔든다고 보았다. 특히 천주교는 평등사상, 조상에 대한 제사 거부 등 당시 성리학적 국가 질서에 반대되는 내역이 다수 포함되어 있어 위정자들로부터 큰 반감을 살 수밖에 없었다.

1866년(고종 3) 병인박해 때 천주교인 다수와 프랑스 선교사들을 처형한 일에 대한 보복으로 프랑스 군대가 침입하여 병인양요가 발생하면서 이항로(李恒老, 1792~1868), 기정진(奇正鎭, 1798~1879) 등의 학자가 적극적인 척사론을 주장하였다. 특히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부친 남연군 묘(南延君墓)가 파헤쳐진 오페르트 도굴 사건으로 민심은 더욱 위정척사에 동조하게 되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흥선대원군은 1871년 신미양요 직후 전국에 척화비(斥和碑)를 세워 외세를 배격하자는 주장을 널리 유포하였다.

이후 일본과 강화도 조약을 맺고 일본의 침략이 시작되자 왜양일체론(倭洋一體論)이 등장하며 위정척사 운동은 그 대상이 일본으로 확대되었다. 유생들을 중심으로 의병을 결성하여 외세 특히 일본에 대항하는 움직임으로 나타났다. 이항로의 제자인 김평묵(金平默), 유중교(柳重敎), 최익현(崔益鉉, 1833~1906), 기정진을 이은 기우만(奇宇萬)과 송병선(宋秉璿) 등이 일제의 침략에 대하여 위정척사를 실천한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위정척사 운동은 외세로부터 조선을 구하자는 취지로 자존 의식을 배양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으나 동시에 조선 초기부터 지속되어 온 구지배 체제를 유지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는 점에서 부정적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 관련자료

ㆍ위정척사 사상(衛正斥邪思想)
ㆍ위정척사 운동(衛正斥邪運動)
ㆍ위정척사(衛正斥邪)
ㆍ위정척사론(衛正斥邪論)
ㆍ위정척사파(衛正斥邪派)
ㆍ척사(斥邪)
ㆍ척사론(斥邪論)
ㆍ척사파(斥邪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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