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칙서

제목 칙서
한자명 勅書
유형
시대 조선 시대
관련국가 조선
유의어
별칭•이칭

[정의]

조서(詔書)와 함께 중국의 황제가 발급하던 가장 대표적인 외교 문서.

[내용]

조선이 명(明)과 주고받았던 외교 문서는 다양한 형태로 존재했다. 이 중 가장 중요하게 취급되었던 문서가 바로 황제와 국왕이 주체가 되어 발급하는 문서였다. 중국의 황제가 발급했던 대표적 외교 문서가 조서(詔書)와 칙서(勅書)였고, 황제로부터 책봉을 받는 국가의 국왕이 발급했던 외교 문서가 표문(表文)과 주문(奏文)이었다. 이 문서들은 양국의 군주들이 주체가 되어 생산되었던 문서였기 때문에 외교 문서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취급되었다.

조서는 황제의 명령을 담은 가장 높은 단계의 문서였다. 중국에서 황제의 사망과 새 황제의 즉위를 알릴 때, 조선의 국왕을 책봉할 때 사신을 조선으로 파견하여 직접 보내왔다. 보통의 경우 조서와 표문은 현란한 수사법과 고사(故事)를 폭넓게 활용해 작성된 문서로 엄격한 형식에 따라야만 했다. 따라서 조서와 표문은 외교 문서 중 가장 의례적 서식(書式)을 가지고 있었다.

칙서와 주문 역시 군주 사이에 주고받는 외교 문서라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조서⋅표문과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조서⋅표문과는 달리 다양한 현안에 대한 실무적 성격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던 외교 문서였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 문서를 작성할 때에는 수사적 어휘보다는 행정적 문체와 용어를 위주로 사용했다. 조선이 외교적 요구 사항을 표문으로 작성하여 중국에 보내면, 중국은 그에 대하여 결정하고 답변으로 황제의 칙서를 주었다.

조서와 칙서는 별도의 문서였지만 함께 오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조선에서는 두 문서를 함께 받는 방식으로 의례(儀禮)를 진행했다. 하지만 성종(成宗, 재위 1469~1494) 대에 두 문서를 받는 의례를 정확하게 구분해야 한다는 명 사신의 요구에 따라 별도의 의례를 진행하였다.

▶ 관련자료

ㆍ칙서(勅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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