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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학파

제목 북학파
한자명 北學派
유형
시대 조선 시대
관련국가 조선, 청(靑)
유의어 이용후생학파(利用厚生學派)
별칭•이칭

[정의]

18세기 청나라의 선진 문물을 배우자고 주장한 학파.

[내용]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와 군신(君臣) 관계에 놓인 조선은 대외적으로는 사대 관계를 맺으면서도 청나라를 야만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100여 년의 시간이 흐르고 조청 관계(朝淸關係)가 안정되면서 청나라를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문물을 도입하자는 움직임이 일게 되었다. 이러한 주장을 한 사람들을 일컬어 북학파라고 한다.

청나라와 직접적인 접촉을 했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북학파가 성립되었다. 대표적인 북학파로 알려져 있는 홍대용(洪大容, 1731~1783), 박지원(朴趾源, 1737~1805), 박제가(朴齊家, 1750~1805)는 모두 사신단의 일원으로 청나라에 직접 다녀옴으로써 청나라의 변화상을 목도한 인물들이다. 이들은 북경에서 만난 청나라 문인들과의 교유를 통해서 사고를 더욱더 확장시킬 수 있었으며, 사행에서 돌아와 『담헌서(湛軒書)』, 『열하일기』, 『북학의』와 같은 저술을 남길 수 있었다.

북학파는 청나라에도 중화(中華)의 문물이 남아 있음을 인정하고 그들의 발전상을 유연한 사고방식으로 수용함으로써 조선의 현실을 개혁할 방안을 찾았다. 그 핵심은 농업 생산력 증대와 상공업의 활성화, 유통의 확대 등이었으며, 북학파는 이를 통해 백성의 생활을 윤택하게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토지 제도의 개혁을 강조한 실학자를 경세치용학파(經世致用學派)로 부르는 것과 대비하여 생산력 증대, 상공업과 유통의 확대를 강조한 북학파를 이용후생학파로 부르기도 한다.

[의의]

북학파는 조선 시대 전통적인 화이관(華夷觀)과 주자학 중심의 학문적 경향에서 벗어나 새로운 흐름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또한 이후 개화사상(開化思想)에 영향을 주었다는 견해도 있으나, 최근에는 이에 대한 비판도 있다.

▶ 관련자료

ㆍ북학(北學)
ㆍ북학론(北學論)
ㆍ북학파(北學派)
ㆍ이용후생 학파(利用厚生學派)
ㆍ중상 학파(重商學派)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