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용어 해설유형별 > 단체

고려 공산당

제목 고려 공산당
한자명 高麗共産黨
유형
시대 근대
관련국가 중국, 러시아
유의어
별칭•이칭

[정의]

1921년 상하이와 이르쿠츠크에서 각각 결성된 한인 공산주의 정당.

[내용]

한인사회당의 이동휘(李東輝), 김립(金立) 등은 1920년 5월경 상하이에서 ‘한국 공산당’이라는 임시 조직을 결성했다. 한편 이르쿠츠크에서도 1920년 7월 전로한인공산당중앙총회가 결성되었다. 재상해한국공산당과 전로한인공산당중앙총회는 모두 통일된 공산당 조직 건설을 목표로 삼고 있었지만, 공산당 창립의 주도권을 놓고 서로 대립하였다.

1921년 5월 20일부터 4일간 상하이에서 ‘전한 공산당 대표회’가 개최되었다. 이 대회에는 한국 국내를 비롯하여 중국⋅만주⋅일본 등지의 한국인 공산주의 단체 대표자 30여 명이 참가하였고, 이 대회를 통해 ‘고려 공산당’이 결성되었다. 중앙위원으로는 이동휘⋅김립⋅박진순(朴鎭淳)⋅김철수(金錣洙)⋅장덕수(張德秀) 등이 선출되었다.

이와는 별도로 1921년 5월 이르쿠츠크에서도 한인 공산당 창립대회가 열렸다. 1921년 5월 4일부터 12일간 개최된 이 대회에는 한국 국내를 비롯하여 소비에트 러시아⋅극동 공화국⋅중국 등에서 26개 단체의 대표자 85명이 참석하였다. 이 대회를 통해 또 하나의 고려 공산당이 결성되었다. 중앙위원으로는 김만겸(金萬謙)⋅김철훈(金哲勳)⋅장건상(張建相)⋅최고려(崔高麗)⋅한명세(韓明世) 등이 선출되었다. 이르쿠츠크에서 결성된 고려 공산당에는 소비에트러시아에 귀화한 한국인들이 많이 참여하였다.

이 두 개의 고려 공산당은 각각 결성된 지역명을 따서 ‘상해파 고려 공산당’과 ‘이르쿠츠크파 고려 공산당’으로 구별하여 불렀다. 상해파 고려 공산당과 이르쿠츠크파 고려 공산당은 단순히 결성된 지역만 다른 것이 아니라 추구하는 혁명론이 달랐다. 상해파 고려 공산당은 먼저 일제에 의한 식민 지배를 벗어나기 위해 민족 혁명이 필요하며, 그 이후에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전환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르쿠츠크파 고려 공산당은 사회주의 혁명을 통한 소비에트 건설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후에 상해파와 마찬가지로 2단계 혁명론으로 변화하였지만 급진적 성격은 없어지지 않았다. 이러한 혁명론의 차이는 민족통일전선에 대한 정책에서 그 차이가 더욱 두드러졌다. 상해파 고려 공산당은 민족 혁명을 우선시하였기 때문에 광범위한 민족주의 세력과 민족통일전선을 추구하는 데 적극적이었다. 반면에 이르쿠츠크파 고려 공산당은 민족 통일 전선에 소극적이었고, 민족주의 세력과의 제휴에 부정적이었다.

▶ 관련자료

ㆍ고려 공산당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