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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부

제목 신민부
한자명 新民府
유형
시대 근대
관련국가 중국
유의어
별칭•이칭

[정의]

1925년 북만주 지역의 항일 무장 단체들이 통합하여 결성된 무장 독립운동 단체이자 한인 자치 기관.

[내용]

1920년 간도 참변(경신참변)으로 간도 지역의 독립군 근거지가 파괴되자, 북로 군정서를 비롯한 대한 독립군, 대한 국민회, 대한 신민회, 도독부, 의군부 등의 독립군 부대는 북만주 밀산에 집결하여 통합 단체인 대한 독립군단을 결성하고 러시아령 연해주 자유시로 이동하였다. 그러나 1921년 6월 자유시 참변으로 많은 대원들이 살상되었으며, 독립군 부대들도 큰 타격을 받고 흩어지게 되었다. 자유시 참변으로 흩어졌던 북만주 지역의 독립운동 세력들은 만주로 귀환한 후 병력을 수습하고 흩어진 독립군 부대들의 통합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 결과 1922년 8월 북만주에서 이범윤(李範允)을 총재로, 김좌진(金佐鎭)을 총사령관으로 하는 대한 독립군단이 재건되었다. 그러나 이전과 같은 대규모 독립군 부대를 편성하지는 못했고, 북만주 지역 독립운동 단체를 망라하지도 못했다.

1925년 3월 영안현(寧安縣) 영안성(寧安城)에서 북만주 항일 무장 독립 단체를 통합하기 위한 대회가 열렸다. 이 대회에서 김혁(金赫)과 조성환(曺成煥) 등이 중심이 된 대한독립군정서와 이범윤과 김좌진 등 대한 독립군단의 지도자들이 주도하여 북만주 한인 사회의 자치 기관으로서 신민부를 결성하였다. 1925년 10월 14일 신민부의 제1차 정기총회가 열렸고, 중앙집행위원장에 김혁, 민사부 위원장에 최호(崔灝), 군사부 위원장에 김좌진, 참모부 위원장에 나중소(羅仲昭), 외교부 위원장에 조성환 등이 선출되었다.

신민부는 삼권 분립을 기초로 행정⋅입법⋅사법 기관을 갖추고, 북만주 지역의 한인 사회를 관할하는 자치 정부를 자임하였다. 한인들의 경제 부흥과 교육 진흥을 위한 부서를 두고 토지 경작을 위한 공농제(公農制) 실시, 식산 조합과 소비조합 설치, 부업 장려 등의 활동을 통하여 한인들의 생활을 안정시키고자 하였다. 아울러 군구제(軍區制)와 둔전제(屯田制)를 실시하여 장정들이 평소에는 농사를 지으면서 군사 훈련을 받도록 하였다. 50여 개의 학교를 설립하여 민족 교육도 실시하였다. 또한 민족 의식 고취와 독립 이념 전파를 위한 기관지 〈신민보(新民報)〉를 발행하고, 독립군 양성을 위하여 성동 사관 학교(城東士官學校)를 설립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주요 간부들이 1927년 2월 일본 경찰에 체포되면서 존립이 위태로워졌다. 남은 간부들이 신민부의 존속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더 적극적인 무장 투쟁을 주장하는 군정파와 우선 교육과 산업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민정파가 대립하여 조직이 분열되었다. 군정파는 군사부 위원장 겸 총사령관인 김좌진이 중심인물이었고, 민정파는 민사부 위원장 최호가 이끌었다. 그런 가운데 1927년 초부터 만주에서도 민족 유일당 운동과 그 일환으로서 3부 통합이 추진되었다. 그러나 민족 유일당 결성의 당위성에는 다들 공감하면서도 그 통합과 조직 방법에서는 만주 지역 각 독립운동 단체들 사이에서 이견이 발생하였다. 신민부 내부에서도 군정파는 기존 단체들을 해체하고 개인 참여로 민족 유일당을 결성할 것을 주장하였고, 민정파는 기존 단체의 연합기관으로 결성할 것을 주장하였다. 한편 1928년 9월 정의부 주관으로 삼부 통일 회의가 개최되었지만, 통합에 실패하면서 11월에 회의가 중단되게 된다. 이런 가운데 10월 빈주(賓洲)에서 열린 한인들의 회의를 군정파가 민정파의 비밀 회합으로 오해하여 무력 공격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로 인하여 두 파는 완전히 분리되게 된다. 신민부 군정파는 정의부의 탈퇴파 및 참의부의 탈퇴파와 연합하여 1928년 12월에 혁신의회(革新議會)를 조직하였다 민정파는 정의부 다수파 및 참의부 잔존 세력과 함께 1929년 4월 1일 국민부(國民府)를 조직하였다. 1929년 5월 혁신의회의 주요 간부가 체포되면서 조직이 붕괴되자, 김좌진 등 신민부 군정파는 아나키즘 세력과 연합하여 1929년 7월 21일 한족총연합회(韓族總聯合會)를 결성하였다.

▶ 관련자료

ㆍ신민부(新民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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