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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신보

제목 국민신보
한자명 國民新報
유형
시대 근대
관련국가 대한제국, 일본
유의어
별칭•이칭

[정의]

1906년부터 1910년까지 발간된 일진회(一進會)의 기관지.

[내용]

1906년 통감부가 설치되자 일진회는 단체의 존재를 선전하고 정치적 활동의 폭을 넓히기 위해 1906년 1월 6일 〈국민신보〉를 창간했다. 초기 운영 자금은 전남 관찰사를 지낸 김세기(金世基)가 부담했고, 1907년 상반기에는 통감부가 일진회에 지원한 보조금의 일부에서 충당되었다. 그러나 〈국민신보〉의 재정난은 크게 개선되지 못한 채 신문 발행을 겨우 유지하는 정도였다. 발행 부수는 1908년 약 2천 부를 조금 상회하여 〈제국신문(帝國新聞)〉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창간 초기 사장은 이용구, 주필은 이인직이었다. 또한 〈오사카아사히신문(大阪朝日新聞)〉에서 기자로 활동했던 구로사키 미치오(黑崎美智雄)가 주간을 맡기도 했다. 2대 사장은 송병준, 3대 사장은 한석진(韓錫振), 4대 사장은 최영년(崔永年)이 맡았다.

〈국민신보〉는 4면 7단의 편집 체제로 발행되었고, 1면 상단에 ‘외보(外報)’를 배치하고 각국의 중요한 사건을 다루었다. ‘관보(官報)’와 ‘잡보(雜報)’란은 당시 발행된 다른 신문과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지방잡사(地方雜事)’를 별도로 배치하여 지방 동정을 자세히 보도했고, 연재소설, 만평 등을 배치하여 대중성을 강화했다. 논설을 따로 두지 않았다는 점은 다른 신문과 구분되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국민신보〉는 친일 논조를 설파하면서 반일 활동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이 때문에 〈대한매일신보〉, 〈황성신문〉과 여러 번 논쟁을 하기도 했다. 1910년 10월 11일에 폐간되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