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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독립운동지혈사

제목 한국독립운동지혈사
한자명 韓國獨立運動之血史
유형
시대 근대
관련국가
유의어
별칭•이칭

[정의]

1920년 박은식(朴殷植, 1859~1925)이 1884∼1920년의 항일 투쟁을 기술한 역사서.

[내용]

박은식은 독립운동가이면서 근대 민족주의 이념의 성립에 기여한 사상가이자 역사학자였다. 그는 나라가 힘이 없어 망했지만 종교와 역사, 언어, 문자에 국혼(國魂)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독립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했다. 또한 우리 민족이 독자적인 언어, 풍속, 예의, 의식 등을 유지했고, 다른 나라와는 구별되는 성질을 가진 강한 국혼을 형성하여 다른 민족에 결코 동화될 수 없다고 보았다. 이러한 국혼론은 1915년 저술한 『한국통사(韓國痛史)』에서 잘 드러난다.

1920년 중국 상하이 유신사(維新社)에서 간행된 『한국독립운동지혈사』(이하 ‘혈사’)는 『한국통사』와 함께 박은식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그는 『한국통사』를 저술한 뒤 훗날 광복사를 쓰려고 했다. 그런데 3⋅1 운동에 자극을 받아 광복사에 앞서 ‘피의 역사’, 곧 일제의 침략에 대항하여 한민족이 국권 회복을 위해 투쟁한 ‘혈사’를 서술하게 된다. 박은식은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세계정세의 변화에도 자극을 받았다. 1917년의 러시아 혁명을 “세계 개조의 동기”로, 미국 대통령 윌슨이 주장한 민족 자결주의를 “세계 개조의 진보”로 보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의 독립운동은 세계 개조를 지향하는 혁명 운동이었다. 곧 그는 3⋅1 운동을 두고 “맨손으로 일어나 붉은 피로써 독립을 요구”한 “세계 혁명사에서 신기원을 열어놓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러한 시각에서 순 한문으로 서술된 ‘혈사’는 서(序)와 상편 25장, 하편 31장, 부록, 결론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편에서는 『한국통사』에서 언급한 부분을 줄이고 주로 독립운동과 관련된 사항을 서술했다. 갑신정변에서 동학 농민 혁명, 의병 투쟁, 독립 협회 운동, 105인 사건을 독립운동의 주요 축으로 삼았고, 일제의 침탈 과정을 을미사변과 한일 의정서, 을사늑약, 정미 7조약, 1910년 강점과 1910년대 일제의 식민 통치 순으로 기술했다. 하편에서는 3⋅1 운동과 그 뒤의 독립운동 사례를 서술했다. 3⋅1 운동의 배경이 되는 세계 사조의 변화, 고종(高宗, 재위 1863~1907)의 사망, 그리고 3⋅1 운동의 폭발과 지역별 전개, 재외한국인의 독립 선포, 상해 임시 정부의 탄생이 주요 내용이다. 이어서 3⋅1 운동 당시 일본의 난폭하고 야만적인 살육 행위를 상세히 기록했다. 또한 파리 강화 회의에서의 활동과 강우규의 의거, 여운형의 도일(渡日) 선전 활동, 청산리 대첩 등을 서술했고, 이에 대한 일본의 러시아 지역에서의 한국인 학살, 서구 신문의 보도 내용 등을 다루었다. 부록에는 한국인의 독립운동에 대한 세계 여론을 수록했는데, 미국인 헐버트와 맥켄지의 보고문, 미국 상원의 보고문, 외국 신문의 기사를 소개했다.

박은식은 ‘혈사’에서 풍부한 자료를 활용해 독립운동과 일제의 잔학상을 폭로했다. 광범위한 자료를 활용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상해 임시 정부의 사료편찬위원회에 참여하여 『한일관계사료집』을 편찬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혈사’는 최초의 독립운동사 개설서이자 사료적 가치를 함께 지닌 자료집이었다. 또 ‘혈사’는 『한국통사』에서 제기한 국혼론을 계승하면서도 발전된 역사 인식을 보였다. 러시아 혁명이나 민족 자결주의 등 세계정세의 변화를 바라보고, 3⋅1 운동 당시 민중의 역량을 경험하면서, 독립 자체를 ‘혁명 운동’의 과정으로 이해했고 민중의 힘을 중시하였다. 박은식은 이러한 역사 서술을 통해 한국인에게 민족의식을 일으키고 독립에 대한 신념을 갖게 하고자 노력했다.

▶ 관련자료

ㆍ한국독립운동지혈사(韓國獨立運動之血史)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