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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강 전투

제목 백강 전투
한자명 白江戰鬪
유형
시대 삼국 시대, 통일 신라와 발해
관련국가 백제, 신라
유의어
별칭•이칭

[정의]

663년 백제 부흥군이 왜(倭)의 지원군과 함께 나당(羅唐) 연합군과 백강(白江)지금의 금강(錦江) 하구에서 벌인 전투.

[내용]

660년 백제가 나당 연합군에 의해 멸망하고 의자왕(義慈王, 재위 641~660)을 포함한 수많은 귀족들이 사로잡혔다. 그러나 아직 백제 각지에는 많은 군사들이 남아 있었고, 이들에 의해 백제 부흥 운동이 진행되었다.

백제 부흥군은 복신(福信)과 승려 도침(道琛)을 중심으로 결집하고, 왜에 도움을 요청하였다. 이에 661년 일본에 인질로 가 있던 백제 왕자 부여풍(扶餘豊)이 왜군과 함께 귀국하여 합류하였다. 부흥군은 기세를 높여 한때 웅진 도독부(熊津都督府)를 포위하면서 당군을 압박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복신이 도침을 죽이고, 부여풍이 복신을 죽이는 등 내부 분열로 인해 부흥군 세력은 많이 약화되었다.

663년 8월 백제 부흥군의 본거지로 나당 연합군이 진군하자, 부흥군은 왜의 원군 4만여 명과 함께 백강에서 전투를 벌였다. 4차례에 걸친 치열한 전투에서 백제 부흥군은 크게 패하였으며, 왜선 400척이 불에 타 그 연기와 불꽃이 하늘과 바다를 붉게 물들일 정도였다.

그리고 얼마 뒤 부흥군의 중심 거점이었던 주류성(周留城)이 나당 연합군에게 함락되었다. 부여풍은 고구려로 망명하였으며, 왜군은 한반도에서 완전히 철수하였다. 백제 부흥 운동의 또 다른 주축이었던 흑치상지(黑齒常之)와 사타상여(沙吒相如)는 당에 투항하였다.

▶ 관련자료

ㆍ백강(白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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