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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부

제목 집사부
한자명 執事部
유형
시대 삼국 시대, 통일 신라와 발해
관련국가 신라, 통일 신라
유의어 품주(稟主), 조주(祖主)
별칭•이칭

[정의]

기밀 사무(機密事務)를 관장하던 신라의 관부.

[내용]

651년(신라 진덕 여왕 5년)에 왕의 가신(家臣)적 존재로서 국가 재정 업무를 담당하던 품주(稟主)를 개편해 집사부를 설치하였다. 집사부는 왕명의 출납(出納)과 국가 기밀 사무를 관장하였으며, 829년(신라 흥덕왕 4년)에는 집사성(執事省)으로 개칭되었다.

집사부의 성격과 위상이 어떠했는지에 대해서는 분명한 기록이 없어 학자들마다 견해가 엇갈린다. 일반적으로는 국정 운영이 귀족 회의체를 통한 합의로 이루어지던 방식에서 국왕이 주도하여 정책을 결정하고 행정 관료가 이를 집행하는 방식으로 전환되면서, 행정을 총괄할 새로운 관부가 필요해져서 최고 관부인 집사부가 설치되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집사부 장관인 중시(中侍)에 취임할 수 있는 관등이 다른 중요 관부보다 낮았기 때문에, 집사부가 다른 관부들을 거느리는 최고 관부는 아니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이 입장에서는 집사부가 최고 관부라기보다는 왕의 근시(近侍) 기구에 가까운 것이었다고 보고 있다.

집사부가 여러 관부를 거느리는 최고 관부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왕권 강화가 이루어지면서 왕을 보좌하는 관료 중심의 정치 체제가 성립되는 시점에 개편⋅설치된 관부였음은 분명하다. 따라서 집사부는 왕을 도와 정책을 구상하고, 결정된 정책을 여러 관청에 왕명으로 전달하는 한편 정책이 잘 집행되도록 관리하는 역할을 하는 국정 운영의 핵심 관부였다고 볼 수 있다.

집사부에 소속된 관원은 장관인 중시 1명, 차관 전대등(典大等) 2명, 그 아래 대사(大舍) 2명, 사지(舍知) 2명, 사(史) 14명이 있었다.

▶ 관련자료

ㆍ집사부(執事部)
ㆍ품주(稟主)
ㆍ집사성(執事省)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