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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권당

제목 만권당
한자명 萬卷堂
유형
시대 고려 시대
관련국가 고려
유의어
별칭•이칭

[정의]

충선왕(忠宣王, 재위 1298, 1308~1313)이 원(元)나라 수도인 대도(大都)지금의 베이징의 자기 집에 설치한 서재(書齋).

[내용]

충선왕은 1313년(충선왕 복위 5) 왕위를 아들 충숙왕(忠肅王, 재위 1313~1330, 복위 1332~1339)에게 물려주고, 이듬해 원나라로 가서 자신의 저택에 서재를 짓고 만권당(萬卷堂)이라 이름 지었다. 충선왕은 이곳에서 염복(閻復), 요수(姚燧), 조맹부(趙孟頫), 우집(虞集), 원명선(元明善) 등 중국의 유명한 학자들과 학문을 나누었으며, 자신을 시종하던 고려의 신하들도 함께 교유하도록 하였다. 특히 이때 이제현(李齊賢, 1287~1367)은 중국 학자들과 교류하여 대학자로 성장할 수 있었다.

만권당에 드나들던 요수가 과거 제도(科擧制度)를 시행해야 한다고 건의하자, 충선왕은 이를 원나라 황제에게 전하여 원나라에서 과거제가 실시되는 데 영향을 미쳤다. 이곳에 모인 학자들은 대부분 남송(南宋) 출신으로 주자 성리학(朱子性理學)과 시(詩)⋅서(書)⋅화(畫)에 조예가 깊어, 훗날 고려에 주자 성리학이 보급되고 조맹부의 송설체(松雪體) 등 새로운 예술적 기풍이 수입되는 계기가 되었다.

만권당이 언제 폐지되었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1320년(충숙왕 7) 원나라 인종(仁宗) 황제가 사망한 뒤 충선왕이 실각하면서 그 기능을 상실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의의]

충선왕이 원의 수도인 대도에 지은 만권당에서 고려와 원나라 학자들은 친밀하게 교류하였고, 이는 훗날 고려에 주자 성리학이 널리 보급되는 계기가 되었다.

▶ 관련자료

ㆍ만권당(萬卷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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