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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경

제목 3경
한자명 三京
유형
시대 고려 시대
관련국가 고려
유의어
별칭•이칭

[정의]

고려 시기에 설치한 세 곳의 별경(別京).

[내용]

12세기 초 남경(南京) 설치 이전에는 서경(西京)⋅동경(東京)⋅개경(開京)의 3경을, 남경 설치 이후에는 서경⋅동경⋅남경의 3경을 지칭한다. 혹은 서경⋅개경⋅남경을 3경으로 칭하기도 하였다. 고려 초 태조(太祖, 재위 918∼943)는 고구려의 수도였던 평양(平壤)에 서경을 설치하여 개경과 함께 양경을 두었다. 987년(성종 6)에는 성종(成宗, 재위 981~997)이 신라 수도였던 경주(慶州)를 동경으로 승격시키면서 처음으로 3경이 마련되었다.

이후 1067년(문종 21) 문종(文宗, 재위 1046∼1083)이 양주(楊州)를 고쳐 남경으로 삼고 이듬해 남경 궁궐을 건설하였으나, 이는 1078년(문종 32) 이전에 폐지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후기까지 이어진 남경은 숙종(肅宗, 재위 1095∼1105) 대에 건설된 것으로, 1099년(숙종 4) 양주 일대에서 터를 살핀 후 1101년(숙종 6) 궁궐 등을 건설하기 시작하였다.

이로써 개경을 포함하여 총 4경이 되었지만 4경이라 부르지 않고, 보통은 서경⋅남경에 개경을 더하거나, 혹은 서경⋅남경에 동경을 꼽아 3경이라고 부른다. 수도인 개경을 제외한 3경은 지방 행정 구획을 말할 때 쓰인다. 그리고 서경⋅남경⋅개경의 3경 체제는 국왕이 이 세 곳을 돌아가며 일정 기간씩 머문다면 나라와 왕업의 운이 연장되고 주변 국가가 조회할 것이라는 풍수적 사고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의의]

하나의 경(京)이 아니라 여러 경을 두는 것은 왕업을 연장해야 한다는 풍수적 사고에서 비롯되었지만 중앙 정부의 집권 체제 형성과도 관련이 깊다. 이와 같은 별경 체제는 조선이 건국되고 중앙 집권 체제가 강화되면서 사라졌다.

▶ 관련자료

ㆍ3경(三京)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