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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평의사사

제목 도평의사사
한자명 都評議使司
유형
시대 고려 시대
관련국가 고려
유의어 도당(都堂)
별칭•이칭

[정의]

고려 후기에 국정을 심의하고 결정한 조정의 최고 정무 기구.

[내용]

고려 전기에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의 다섯 재신(宰臣)과 중추원(中樞院)의 여섯 추밀(樞密)이 모여 국방 문제 등 국가의 주요 정치 의제를 협의하던 도병마사(都兵馬使)에 기원을 두고 있다. 원래 도병마사는 국방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운영된 협의 기구였으나, 고종(高宗, 재위 1213∼1259) 말엽에 이르면 도당(都堂)이라 칭하면서 중서문하성과 추밀원의 상층 구성원인 재신, 추밀들이 모여 회의하는 기구가 되었으며, 국방 문제뿐만 아니라 국사 전반에 걸친 주요 의제를 논의, 의결하는 기구로 변모하였다.

1279년(충렬왕 5)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로 명칭이 바뀌면서, 참여하는 구성원이 확대되고 실질적인 권한도 더욱 강화되었다. 재추(宰樞) 외에 재정 부문을 담당하는 삼사(三司)의 관원들은 물론, 정식 직임을 갖지 않은 채 재상급으로 국정에 참여하는 상의(商議)까지 포함되어 고려 말에는 참여 인원이 70~80명에 달하였다.

또한 도평의사사는 기능상으로도 상설 기관화되면서 권한이 더욱 강력해졌다. 중앙의 여러 관서를 실질적으로 관할하고 각 지방의 안렴사(按廉使)에게도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명실상부한 중앙의 최고 기구로 기능하였다.

고려 말기에 도평의사사의 기능이 확대⋅강화되자 조정에서는 도평의사사의 행정 사무를 상시적으로 담당하는 인원이 필요해졌다. 그리하여 공양왕(恭讓王, 재위 1389∼1392) 대에 관제를 개편할 때 조직을 정비하고 개경(開京) 안에 별도의 청사를 신축하기도 하였다. 조선 건국 후에 의정부(議政府)로 개편되었다.

▶ 관련자료

ㆍ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
ㆍ도당(都堂)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