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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리

제목 향리
한자명 鄕吏
유형
시대 고려 시대
관련국가 고려
유의어
별칭•이칭

[정의]

고려에서 조선 시기에 걸쳐 지방 행정 사무를 담당한 계층.

[내용]

고려 시기의 향리(鄕吏) 제도는 신라 말 각 지방에서 성장한 세력을 통치 체제로 편입시키는 과정에서 성립되었다. 향리 제도는 태조(太祖, 재위 918∼943) 대부터 부분적으로 정비되기 시작하여 성종(成宗, 재위 981~997) 대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정비되었다. 983년(성종 2) 향리 직제를 개정하여 향리의 수장으로 호장(戶長)⋅부호장(副戶長)을 두고, 그 밑에 일반 서무를 관장하는 호정(戶正)⋅부호정(副戶正)⋅사(史) 계열, 지방 주현군(州縣軍)과 관련된 사병(司兵) 계열, 그리고 조세⋅공부의 보관 및 운반과 관련된 창정(倉正)의 사창(司倉) 계열로 조직하였다.

1018년(현종 9)에는 지방 제도를 정비하면서 향리의 정원을 정하고 직급에 따라 공복(公服)을 지정하였으며, 1051년(문종 5) 10월에는 향리의 승진 규정을 마련하였다. 이를 통해 호장 이하 9단계에 걸친 향리 직제가 완성되었다.

고려 시대에는 중앙에서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는 속현(屬縣)이나 향(鄕)⋅소(所)⋅부곡(部曲)이 많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지역에서 향리들은 행정 실무를 자치적으로 수행하였다. 이들은 주로 세금을 징수하고 부역을 징발하며, 직접 상경하거나 주변의 큰 군현에서 역을 행하기도 하였다. 이에 대한 대가로 국가로부터 토지를 지급받았다. 그러나 12세기 이후 권세가의 토지 및 인민 침탈, 농민들의 토지 이탈 및 도망, 중앙의 직접 지방 통치 제도 강화 등으로 인해 향리들은 실질적인 권한을 많이 잃게 되었으며, 여기에 향역의 부담이 더해지면서 향리층에서 이탈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반면 일부는 과거(科擧)를 통해 지배 신분층으로 편입되었다.

[의의]

향리는 지방 통치의 한 축을 담당한 주요 세력이었다. 호장⋅부호장 등의 상층 향리는 지방의 지배층으로, 일부는 중앙으로 진출해 중앙 지배층에 편입되기도 하였다. 중하층 향리는 중앙 문벌 귀족 및 지방 지배층과 피지배 지역민 사이에서 지방 통치 실무를 담당하였다. 향리는 중앙 통치가 강화되고 고려 후기에 사회 변동을 거치면서 권한과 위상이 점차 축소되었다.

▶ 관련자료

ㆍ향리(鄕吏)
ㆍ장리(長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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