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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융청

제목 총융청
한자명 摠戎廳
유형
시대 조선 시대
관련국가 조선
유의어
별칭•이칭

[정의]

조선 후기 서울과 경기도 일대를 방어하기 위해 설치했던 군영(軍營).

[내용]

1623년(인조 1) 인조반정(仁祖反正) 이후 공신(功臣) 책봉에 불만을 품고 봉기한 이괄(李适, 1587~1624)의 난 당시, 수도 외곽인 경기도가 제대로 방어되지 못하고 점령된 일을 계기로 하여 창설되었다. 왕이 서울에서 공주까지 피신할 정도로 취약한 방어 능력을 보이면서 인조(仁祖, 재위 1623~1649)는 왕권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경기도 일대 정군(正軍)과 속오군(束伍軍)을 별대마군(別隊馬軍)으로 편제하고 1624년(인조 2)에 이서(李曙, 1580~1637)를 기보총융사(畿輔摠戎使)로 임명하여 총융군을 설립했다.

총융청은 처음 창설되었을 때에는 수도의 외곽 방위를 담당했으나 병자호란을 겪으며 궁궐 경비까지 담당하게 되었다. 이후 북한산성이 수축되면서 북한산성의 관리도 담당하였다. 기본적으로 총융청은 급료병으로 운영되었으므로 재원이 반드시 확보되어야 했다. 따라서 총융청은 경기도 각 읍의 삼수미(三手米)를 서울로 올려 보내지 않고 그대로 유치하여 사용하고, 둔전(屯田)을 개간하여 재원으로 사용하였다.

총융청은 19세기까지 존속하였는데, 1846년(헌종 12) 총위영(總衛營)으로 개칭되었다가 1849년(철종 즉위)에 다시 원상으로 복구되었다. 1882년(고종 19)에 친군영제(親軍營制)가 도입되면서 총융청, 어영청(御營廳), 금위영(禁衛營)이 장어영(壯禦營)으로 통합되었다가 다시 5군영제로 복귀되었다. 이후 총융청은 1884(고종 21)년에 완전히 혁파되었다.

▶ 관련자료

ㆍ총융청(摠戎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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