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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풍댐

제목 수풍댐
한자명 水豊dam
유형
시대 근대
관련국가
유의어
별칭•이칭

[정의]

1944년 조선 총독부와 만주국 정부가 공동으로 압록강에 건설한 대형 댐.

[내용]

일제가 세운 괴뢰 국가 만주국은 1936년 ‘만주 산업 개발 5개년 계획’을 실시하기로 결정했고, 이를 위해 막대한 전력이 필요했다. 또 조선 총독부는 한반도에서 대규모의 발전(發電) 가능성을 발견하고, 1920년대 후반부터 조선에서의 전력 개발 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다. 양자 간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로 수풍댐이 건설되었다.

1935년 11월 총독부와 만주국은 압록강 공동 개발을 위한 교섭을 시작했다. 만주국의 실질적인 권력자인 관동군사령관 겸 주만주국대사를 역임했던 미나미 지로(南次郞)가 1936년 8월 조선 총독으로 부임하면서, 압록강 개발의 일환인 수풍댐 건설이 본격화되었다. 1936년 9월 압록강을 처음으로 공동 조사했고, 압록강 유역의 평안북도 삭주군 수풍리를 댐 건설지로 선정했다. 1937년 1월 양자는 ‘선만(鮮滿) 압록강 공동기술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합의하고(설치는 1938년 8월), 압록강 하천 조사와 측량 등을 공동으로 진행했다. 이때 댐 건설은 조선에서 전력 개발에 매진하던 조선 질소 비료 주식회사의 사장 노구치 시타가우(野口遵)가 맡았고, 실무는 구보타 유타카(久保田豊)가 담당했다. 1938년 8월 공사 담당 회사로 노구치를 사장으로 한 조선 압록강 수력 전기 주식회사⋅만주압록강 수력 전기 주식회사가 설립되었다. 이 회사는 사장이 같은 사실상 하나의 회사였다. 댐 공사는 1937년 10월에 착공되었다. 1941년 8월부터 제1호기의 발전을 시작으로 1944년 2월까지 총 6기의 발전기가 설치되었다. 댐은 콘크리트로 만들어졌고, 높이 106.4m, 길이 899.5m로 건설 당시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댐이었다. 댐 건설로 조성된 수풍호는 총 저수량 116억t, 유효 저수량 76억t, 저수지 면적 298.16㎢에 이른다. 저수지 둘레 1074.7㎞로, 댐으로부터 상류 쪽으로 165㎞까지 걸쳐 있다. 댐을 막아 생긴 강물을 낙차를 이용해 수력 발전을 했으며, 최대 출력 60만㎾의 전기를 생산했다. 이렇게 만주국과 총독부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탄생한 수풍댐은 일제에 의해 당시 ‘선만일여(鮮滿一如)’의 상징으로 선전되었다.

그런데 해방 이후 1947년 8월에 소련에서 2대의 발전기를 철거하면서 시설 용량이 40만㎾로 줄어들었다. 6⋅25 전쟁 중인 1952년에는 미군의 폭격을 받아 시설의 70% 가량이 파괴되었다. 휴전 이후 1958년 8월 북한은 소련의 원조를 받아 복구 공사를 완료했으며, 1958년 9월에 1대의 발전기가 추가로 설치되어 총 70만㎾의 시설 용량을 갖추었다. 1960년부터는 북한과 중국이 합작해 조중 압록강 수력 발전 회사를 설립하여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로부터 생산되는 전력은 현재까지도 북한의 중요한 전력 공급원으로서 활용되고 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