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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연군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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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연군 묘(南延君 墓)는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이하응(李昰應, 1820~1898)의 아버지 남연군(南延君) 이구(李球, ?∼1822)의 묘이다.

대대로 조선에서는 풍수지리에 따라 무덤의 자리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흥선대원군 또한 2대에 걸쳐 천자가 나올 자리라는 풍수가의 말에 따라 원래 경기도 연천에 있던 남연군의 묘를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옮길 당시 가야사(伽倻寺)라는 절이 있었는데, 절을 불태우고 탑을 부순 후에 남연군을 이장(移葬)하였으며, 그 후로 7년 만인 1852년(철종 3년) 둘째 아들 이명복(李命福)이 태어났다. 이 사람이 철종(哲宗, 1831~1863, 재위 1849~1863)의 뒤를 이어 12세에 왕위에 오른 고종(高宗, 1852~1919, 재위 1863∼1907)이다.

그러나 1866년(고종 3년) 독일의 상인이던 에른스트 오페르트(Ernst Jacob Oppert, 1832~1903)가 조선과의 통상교섭에 실패한 뒤 대원군과 통상 문제를 흥정하기 위하여 남원군 묘의 시체와 부장품을 도굴하려다 미수에 그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일은 서양인들의 위신은 크게 떨어트렸을 뿐만 아니라, 흥선대원군의 서양에 대한 쇄국정책 강화 및 천주교에 대한 탄압 가중으로 이어졌다.

1989년 충청남도 기념물 제80호로 지정되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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