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속 이미지 자료주제별삼국 이전철기 문화와 여러 나라의 성장

독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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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무덤은 큰 독이나 항아리 등을 널로 사용한 선사 및 고대의 무덤으로, 옹관묘라고도 한다. 선사시대부터 우리나라와 중국⋅일본 등지에서 사용하였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일찍이 청동기시대부터 독특한 양상으로 전개되기 시작하였다.

시대별로 보면, 청동기 시대는 기원단계의 시원형 시기, 초기철기 시대는 양식 완성 시기, 원삼국 시대는 발전기, 삼국 시대는 전성기라고 할 수 있다. 청동기 시대의 독무덤은 부여 송국리, 공주 남산리 등이 있다. 민무늬토기를 세워서 묻고 판석으로 덮었다.

초기철기 시대는 전형적인 양식이 완성된 시기로, 북부지방의 강서 태성리, 신천 명사리, 은률 운성리, 평양 호남리 등의 독무덤과 남부지방의 광주 신창동, 삼천포 늑도, 김해 지내동, 김해 회현동 등의 독무덤이 있다.

원삼국 시대에는 대동강유역의 정백동⋅복사리, 한강유역의 몽촌토성⋅가락동⋅석촌동, 호남지방의 남원 두락리⋅초촌리, 나주 마산리, 고창 송룡리, 영남지방의 경주 조양동, 부산 노포동, 동래 낙민동, 김해 퇴래리, 창원 삼동동, 제주도의 용담동 등의 독무덤이 있다.

삼국 시대에는 신라의 왕도 경주의 황남동 미추왕릉지역, 인왕동고분군지역, 경주 부근지역에서 많은 독무덤이 조사되었다. 신라와 가야의 독무덤은 공통된 양상을 지님과 동시에 독자적인 양식을 갖추고 있다. 특히, 영산강유역의 독무덤은 특별히 제작된 대형 독, 곧 옹관 전용으로 제작된 옹관 수 기를 매장하고 있다. 이는 영산강유역의 전통적인 특수 독무덤집단의 묘제이다. 여기서 독무덤은 고총고분으로서, 귀족들의 가족묘가 최고도로 발전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독무덤은 중국 허베이[華北]지방의 신석기시대 이래의 옹관묘제가 한국으로 전해진 듯하다. 이것이 일본으로 전해져 큐슈(九州) 지방의 독무덤으로 이어졌다. 그리하여 우리나라⋅중국⋅일본을 연결하는 동아시아 독무덤문화권이 형성되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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