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속 이미지 자료주제별삼국 이전철기 문화와 여러 나라의 성장

반량전

※ 가운데 사진을 클릭하시면 이미지 슬라이드를 보실 수 있습니다.

반량전(半兩錢)은 중국 진(秦)대의 동화(銅貨)이다. 원형의 동전 가운데에 사각형의 구멍이 뚫려 있으며, 반량(半兩)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무게는 반량, 즉 12수(銖)로, 왕망(王莽)의 신(新)대(8~23)를 제외하고는 그 후 전화(錢貨)의 기본형식이 된다. 진의 시황제가 전국을 통일한 후 전국의 화폐를 반량전으로 통일하면서 유통이 확대되었다. 8수 반량전,4수 반량전은 전한(前漢)시대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선사시대의 교환수단이 어떠한 것이었는지에 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자급자족적 경제생활단계를 지나서 물물교환이 지배적이었고, 무기와 각종 생산기구⋅장신구⋅가축⋅곡물류 등이 물품화폐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삼한(三韓)시대에는 철을 생산하여 교환수단으로 사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변한(弁韓)에서는 철을 생산하여 일본까지 수출하였고, 중국의 전화(錢貨)처럼 철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동옥저(東沃沮)에서는 금⋅은으로 만든 무문전(無文錢), 즉 문양이 없는 금은전이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일찍이 화폐경제가 발달한 중국으로부터 중국 각 시대의 여러 종류의 화폐가 한반도로 흘러들어왔다. 이와 같은 사실은 중국 고대 화폐로서 명도전(明刀錢)과 포전(布錢)은 물론 한사군(漢四郡)시대에 유입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한나라 화폐인 오수전(五銖錢), 왕망시대의 화폐 등이 한반도의 각 지방에서 출토된 사실을 통해서 짐작할 수 있다. 반량전은 사천 늑도 유적 등지에서 확인되는데, 이 역시 한반도와 중국 간의 교류를 짐작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창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