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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왕릉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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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왕릉비(廣開土王陵碑)는 중국 지린성[吉林省] 지안현[集安縣] 퉁거우[通溝]에 있는 고구려 제19대 광개토대왕(廣開土大王, 재위 391~413)의 능비(陵碑)이다. 414년(장수왕 3년)에 광개토왕의 훈적을 기념하기 위하여 아들인 장수왕이 세운 비석으로, 당시 고구려의 수도였던 국내성(國內城)의 동쪽 국강상(國岡上)에 대왕의 능과 함께 세워졌다. 묘호(廟號)인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의 마지막 세 글자를 본떠서 일명 ‘호태왕비(好太王碑)’라고도 한다.

비는 각력응회암(角礫凝灰岩) 재질의 사면석이나, 자연스러운 모습의 긴 바위 형태이다. 대석(臺石)과 비신(碑身)으로 되어 있고, 비신이 대석 위에 세워져 있으나, 대석과 비신 일부가 땅속에 묻혀 있다. 높이 6.39m에 이르는 우리나라 최대의 크기로 고구려 문화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비신의 사면에 모두 문자가 새겨져 있는데, 비문이 조각된 면적은 각 면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5.5m 높이에서부터 조각하기 시작하였으며, 문자의 크기와 간격을 고르게 하기 위하여 각 면의 위와 아래에는 횡선을 긋고, 매 행은 약 13㎝ 간격으로 가는 종선을 그었다. 네 면에 걸쳐 1,775자~1,802자가 새겨져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비문의 내용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부분은 고구려의 건국신화와 추모왕(鄒牟王) 등의 세계(世系)와 광개토왕행장(行狀)을 기록해 놓았다. 둘째 부분에는 광개토왕 때 이루어진 정복활동과 영토관리에 대한 내용들을 연대순으로 기록해 놓았다. 셋째 부분은 능을 관리하는 수묘인(守墓人) 연호(煙戶)의 숫자와 차출방식, 수묘인의 매매금지에 대한 규정이다.

광개토왕릉비에 대한 연구는 비문의 판독부터 해석까지 다양한 성과가 축적되어 왔다. 그러나 한⋅중⋅일 학계의 이해관계에 따라 많은 견해 차이가 존재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광개토왕릉비는 문헌사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한국 고대사의 실상을 풀어줄 수 있는 사료적 가치가 매우 큰 자료이다. 특히 한⋅중⋅일 삼국 간의 관계를 해명해 줄 수 있는 중요한 사료로, 각국 간의 협동 연구를 필요로 하는 분야이기도 하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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