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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루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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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루묘지(牟頭婁墓誌)는 고구려 광개토왕(廣開土王, 재위 391~413) 때 북부여(北扶餘) 수사(守事)였던 모두루의 묘지(墓誌)이다. 1935년 10월 중국 지린성(吉林省) 지안현(集安縣)의 동북쪽 하양어두(下羊魚頭)에서 발견되었다.

하양어두의 북방 산록에는 조그만 흙무덤 10여 기가 산재해 있는데, 모두루묘는 이 중의 하나이다. 모두루묘는 돌을 쌓아 방을 꾸미고 흙으로 봉분을 입힌 돌방흙무덤으로, 주실(主室)과 전실(前室)의 2개 석실(石室)로 구성되어 있다. 규모는 둘레 70m, 높이 4m로 중간 정도이다. 전실은 가로 3m, 세로 2m 정도의 장방형인데, 특히 주목되는 것은 전실 정면의 윗벽에 한자로 쓰인 묵서(墨書)로, 바로 이 묘의 주인공인 모두루의 묘지명이다.

모두루묘지는 가로와 세로 선을 긋고, 세로로 10자씩 약 80행을 써 내려가 모두 800여 자에 달한다. 그러나 최초의 2행은 제기(題記)로서 종횡의 선을 긋지 않았다. 원래 묘지의 명문은 대부분 심하게 지워져 현재는 약 250여 자만이 판독 가능한 상황이다.

내용은 크게 5문단으로 나누어진다. 첫째는 모두루묘지의 제기이며, 둘째는 모두루의 선조의 사적, 즉 추모성왕(鄒牟聖王)의 노객(奴客)인 모두루의 선조가 북부여로부터 왕을 따라 남하해 왔다는 것을 서술하고 있다. 셋째는 4세기 초에 활약한 것으로 추정되는 모두루의 조상인 대형(大兄) 염모(冉牟)의 사적을 기록하고 있으며, 넷째는 모두루의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관한 기록이다. 다섯째는 묘주(墓主)인 모두루의 행적을 기술하고 있다.

모두루묘지는 광개토왕릉비(廣開土王陵碑)와 함께 고구려사 연구에 있어서 귀중한 자료의 하나이다. 이 묘지명을 통하여 4~5세기 고구려 왕권의 실상과 고구려의 지방 지배 방식, 그리고 당시의 씨족 계승 의식 등을 살펴볼 수 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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