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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가7년명 금동여래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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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가7년명 금동여래입상(延嘉七年銘 金銅如來立像)은 1963년 7월 경상남도 의령에서 출토된 고구려시대의 불상이다. 전체 높이 16.2㎝, 상 높이 9.1㎝, 광배 높이 12.1㎝, 대좌 높이 4.1㎝이다.

이 불상은 작은 금동불상 가운데서 꽤 당당하고 큼직한 불상이다. 손⋅발⋅얼굴 등이 신체에 비해서 유난히 크다. 거칠고 격렬한 조각 수법은 중국 북방 양식과 직결되겠지만, 고구려 역시 중국 북방민족, 특히 북위(北魏)를 세운 선비족(鮮卑族)과는 친연성이 있기 때문에 동일한 문화권에서 나타난 현상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아마도 앞 시대의 인도 양식이 크게 후퇴되고 새로운 북방적 특징이 대두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특히, 이 연가7년명 금동여래입상은 중국 북위 불상과는 달리 띠 매듭인, 이른바 신(紳)을 길게 내리지 않고 있는데 아마도 고구려적인 특징으로 추정된다.

광배 뒤의 명문에 의하면, 이 불상은 평양 동사(東寺)의 승려들이 천불(千佛)을 조성하여 세상에 유포시키고자 만든 것이라 한다. 명문의 처음에 나오는 ‘연가(延嘉)’는 중국이나 일본에서 사용된 적이 없는 연호로, 명문에서 ‘고려국(高麗國)’임을 밝히고 있는 것으로 보아 고구려의 독자적인 연호라고 추정된다. 그리고 명문에 나오는 ‘기미(己未)’년은 일반적으로 539년(안원왕 9년)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천불 가운데 29번째의 이 불상이 당시 신라 내지 가야 지방이던 경상남도 의령에서 출토되었다는 점은, 이와 동시에 만들어진 다른 불상들이 주위 여러 나라에 흩어졌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따라서 고구려의 국력과 불력(佛力)의 유포, 그리고 통일의 의지를 주위 모든 나라에 천명한 의의 있는 불상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강인하고 격렬한 불상 양식은 고구려적인 새로운 특징을 잘 보여 주고 있는 대표적인 불상이라 하겠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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