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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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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산성(管山城)은 충청북도 옥천군 군서면에 있었던 삼국시대의 성으로, 고리산성(古利山城) 또는 환산성(環山城)으로도 불린다.

백제 성왕(聖王, 재위 523~554)은 538년에 수도를 웅진(熊津)에서 사비(泗沘)로 옮기고, 안팎의 제도를 정비하면서 왕권강화에 힘써 중흥을 이루었다. 내부의 안정을 꾀하고 힘을 기른 성왕은 신라 진흥왕(眞興王, 재위 540~576)과 함께 한강 유역을 되찾기 위해 고구려를 공격했다. 그때 고구려는 정치적으로 혼란한 상황이었으므로 쉽게 고구려군을 격파하여, 백제는 한강 하류지역 6군을, 신라는 한강 상류지역 10군을 점령했다.

그러나 진흥왕은 553년 군사를 돌려 백제가 차지한 한강 하류지역을 빼앗고, 그곳에 신주(新州)를 설치했다. 신라에 배신당한 백제는 554년 대군을 동원하여 백제 왕자 여창(餘昌)이 이끄는 군사가 먼저 관산성을 공격하고 성왕은 뒤를 따랐다. 당시 관산성은 신라와 한강 하류지역을 연결하는 군사적 요충지였다.

처음에는 대가야군과 연합한 백제가 우세했으나, 신라의 신주 군주(軍主) 김무력(金武力)의 비장(裨將)인 고간(高干) 도도(刀都)가 성왕을 급습하여 죽이자, 싸움은 신라의 승리로 끝났다. 이 싸움에서 백제는 좌평 4명과 병졸 2만 9,600명을 잃는 대패를 당했다. 이로써 120년 동안 계속된 나제동맹은 깨어지고, 백제는 멸망 때까지 신라와 적대관계에 있게 되었다.

관산성 전투를 통해 신라는 한강 유역에 대한 안정적인 지배권을 확보했고, 가야의 나머지 세력을 병합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또한 신라는 한강 유역의 인적⋅물적 자원을 활용하고, 중국을 통해 직접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게 되어 비약적인 발전이 가능하게 되었다.

관산성의 위치는 백제 성왕 사절지(百濟 聖王 死節地)로 전해지고 있는 옥천군 군서면 월전리 9-3번지 부근과 이곳에서 맞은편 서북방으로 약 800m 떨어져 있는 환산성(環山城) 부근으로 추정하고 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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