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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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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암(政事巖)은 백제시대에 정치를 논의하고 재상을 뽑던 장소이다.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호암리에 있는 암반 지대로 면적은 257,356㎡이며, 호암리 부근 동북편의 산봉우리에 위치해 있다.

백마강 북쪽 1.5㎞ 지점에 범바위[虎巖]라는 바위가 있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따르면, 이 바위에 호랑이의 자취가 있어서 이 일대에 건립된 사찰 역시 이름을 호암사로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의하면 정사암은 백제 후기의 수도인 사비 부근의 호암사(虎巖寺)에 있었으며, 국가에서 재상인 좌평(佐平)을 선출할 때 그 후보가 될 만한 사람 3~4명의 이름을 봉함하여 이 바위 위에 두었다가 얼마 뒤에 이를 개봉하여 이름 위에 인적(印跡)이 있는 자를 재상으로 선출하였다고 한다. 정사암이라는 이름은 이 때문에 생겼다는 것이다. 또한 『여지도서(輿地圖書)』에도 동일한 기록을 인용하여 하늘이 관리를 임명하는 바위라는 뜻으로 천정대(天政臺) 혹은 정사대(政事臺)라 불린다고 하였다.

이러한 정사암 관련 기록은 삼국시대의 정치가 귀족연합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그 성격으로 볼 때 정사암은 화백회의(和白會議)를 개최하던 신라의 사영지(四靈地)와 비견되는 곳으로, 백제 역시 재상 선출 등을 비롯한 나라의 중대사를 의논하기 위해 귀족들만이 출입 가능한 특별회의 장소를 따로 두었으리라 짐작케 한다. 이러한 장소는 신성한 곳으로 간주되어 여기서 논의되고 결정된 사항들에 권위를 부여하였을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정사암은 산 정상에 있고 또한 침식 작용을 많이 받는 곳이어서 건축물의 흔적은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주변에서 백제 연화무늬 와당 등 유물이 일부 발견되었다. 또한 정확한 범위와 건물지의 위치는 확인이 어렵지만 호암리 일대에서 주춧돌과 기와 등 건축용 석재가 발견되고 있어 마을 전부가 호암사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호암사지는 1982년 충청남도 기념물 제32호로 지정되었으며, 정사암 역시 그 역사적 의의를 인정받아 1984년 충청남도 기념물 제49호로 지정되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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