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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릉 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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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릉 지석(武寧王陵 誌石)은 충남 공주시 금성동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유물이다. 백제 25대 왕인 무령왕(武寧王, 재위 501~523)과 왕비의 지석으로, 모두 2매이다. 이 2매의 지석은 왕과 왕비의 장례를 지낼 때 땅의 신에게 묘소로 쓸 땅을 사들인다는 문서[買地文]를 작성하여 그것을 돌에 새겨 넣은 매지권(買地券)으로, 1971년 무령왕릉이 발견될 때 함께 출토되었다.

이 지석은 중앙의 약간 윗쪽에 지름 1.1cm의 구멍이 있는 섬록암제(閃錄岩製)의 장방형 평판암석으로 만들어졌으며, 크기는 세로 35㎝, 가로 41.5㎝, 두께 4~5㎝이다. 왕의 지석은 표면에 세로줄 선을 음각하여 6행까지 52자의 명문을 음각으로 새겨 넣었으며, 왕비의 지석은 2.5~2.8㎝ 폭으로 선을 긋고 4행에 걸쳐 새겼다. 글자의 필치는 육조체의 영향이 보인다.

왕비의 지석 뒷면에는 매지문(買地文)을 새겼다. 원래 무령왕을 무덤에 안치할 때 묘지와 간지도, 매지권을 만들어 넣었는데, 그 후 529년 왕비를 합장 안치할 때 매지권의 뒷면에 왕비의 묘지를 새겼다.

무령왕릉 지석은 비록 내용은 소략하지만 『삼국사기(三國史記)』 기록의 정확성을 입증해 주었다. 먼저, 지석에 보이는 영동대장군(寧東大將軍)이란 무령왕이 중국 양(梁)나라 고조에게서 받은 작호인데, 『삼국사기』에 이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사마왕(斯麻王)”은 무령왕의 이름인데, 한자는 다르지만 『삼국사기』와 『일본서기(日本書紀)』에 모두 “사마(斯摩 혹은 斯麻)”로 기록하고 있다. 또한 무령왕의 사망 일자 역시 『삼국사기』 기록과 동일하다. 이처럼 무령왕에 대한 『삼국사기』의 기록이 실제와 일치하고 있어, 『삼국사기』 자체의 사료적 정확성을 입증해주고 있다.

무령왕릉 지석은 왕릉 출토유물과 관련된 유적⋅유물의 편년 연구에 기준이 되고 있기도 하다. 왕릉 출토 유물은 피장자가 정확하지 않아서 유적이나 유물의 선후관계만을 밝히는 상대편년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피장자의 신원과 매장 시기를 확실하게 밝히고 있는 지석이 출토됨으로써, 유적⋅유물 편년의 기준을 제공해주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육조체의 글씨 등, 6세기 초 중국 남조와 백제의 문화적 교류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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