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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사(복원 모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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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사(복원 모형)는 백제 30대 무왕(武王, 재위 600~641년) 때 창건된 전북 익산시 금마면의 미륵사를 복원한 모형으로, 미륵사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하여 만들어졌다. 1997년 건립된 미륵사지 유물 전시관 중 개요실에 전시되어 있다.

미륵사는 호국사찰로 창건된 후 천년 가까이 내려오다 17세기 경 폐사가 된 것으로 추정되며, 서탑(西塔) 및 당간지주(幢竿支柱) 등의 일부 석물만 남고 터는 경작지가 되었다. 1966년 사적 제150호로 지정된 후 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의 동탑지 발굴조사(1974~1975년)와 문화재연구소의 종합발굴조사(1980~1995년)로 그 전체적인 면모가 밝혀졌으며, 2만여 점의 유물이 수습돼 규모의 웅장함과 치장의 화려함을 엿볼 수 있다. 발굴 과정에서 미륵사는 3개의 사찰을 한 곳에 세운 삼원병립식(三院竝立式) 가람 배치로 지어졌음이 밝혀졌는데 이는 우리나라의 다른 절터나 중국, 일본에도 유례가 없는 특이한 형태다. 그 규모는 1338만 4699㎡로 신라 때에 지어진 황룡사의 약 2배이다.

절터에 남아 있는 석물 중 탑은 목조탑의 양식을 이어받은 국내 최고(最古) 최대 규모 석탑인 ‘미륵사지 석탑(국보 11호)’이다. 탑은 본래 동쪽, 중앙, 서쪽에 같은 모양의 탑이 하나씩 3개가 있었다. 유일하게 남은 탑인 미륵사지 석탑은 이 중 서탑에 해당하는데 붕괴 위험 등의 문제로 2001년 해체 복원이 결정되어 작업에 들어갔다. 아울러 절터 남쪽에 2기가 남아 있는 보물 제236호 미륵사지 당간지주는 탑과 달리 보존 상태가 양호하며 통일 신라 중기 이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익산시는 2004년 ‘고도(古都)보존 특별법’에 따라 경주와 부여, 공주 등과 함께 ‘고도’로 지정된 익산지역의 가장 우수한 유적인 미륵사를 복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와 함께 고증작업에 나섰다. 이를 위해 국립문화재연구소, 한국전통문화학교, 원광대, 전라북도 등과 함께 ‘미륵사 고증연구 및 모형 제작사업 추진 자문위원회’를 열어 복원에 대한 기본 방향을 논의했다. 이에 따라 미륵사의 모습이 먼저 1/50 축소 모형으로 재현되었는데, 모형의 크기는 가로 3.6ⅿ, 세로 3ⅿ이고 가장 높은 중앙의 7층 목탑 높이는 80㎝이다. 높이 24.7ⅿ로 추정되는 서탑은 49.5㎝로 만들어졌으며, 동탑도 같은 크기로 재현되었다. 탑 이외에 금당 등 5동의 건물과 회랑도 복원되어 있어, 발굴 성과를 토대로 미륵사의 전체적인 규모와 구조를 가늠해볼 수 있게 하였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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