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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납토성 출토 중국제 청동 자루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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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납토성 출토 중국제 청동 자루솥은 사적 제11호인 풍납토성 성내 남단의 토사(土砂) 중에서 발견된 유물이다. 자루솥은 초두(鐎斗)라고도 하는데, 술이나 물과 같은 액체를 데우는 데 사용하던 그릇의 하나로 대개 다리가 셋 달리고 긴 손잡이가 붙어 있으며 청동을 재료로 한다. 이러한 자루솥은 왕실의 취사 뿐 아니라 제사와 같은 신성한 의식에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

풍납토성은 한강 연변의 평지에 축조된 순수한 토성으로, 남북으로 길게 타원형을 이룬다. 이 풍납토성은 둘레 3,740m에 이르는 규모가 큰 평지 토성이었으나 현재는 2,679m 정도 남아 있으며, 동서남북 중 서벽은 1925년의 홍수로 유실되었다. 그러나 현재는 새로 제방을 쌓았으므로 서벽이 완전히 남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풍납토성에서 삼국시대의 청동제 자루솥 2개를 비롯한 다양한 유물이 처음 발견된 것은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이다. 이 해 여름 네 차례에 걸쳐 찾아온 태풍으로 한강에 홍수가 발생하면서 풍납토성의 일부가 쓸려나가 지표 아래의 백제 유물이 드러나게 되었다. 자루솥은 토성 벽에 박힌 항아리 속에 청동거울 등 다른 종류의 유물과 함께 담긴 상태로 발견되었다.

1966년에는 토성 내 포함층의 일부가 발굴되어 선사시대 말기에서 삼국시대에 걸친 토기와 기와의 분포를 알게 되었다. 또 1990년대 들어 토성 내 재개발이 이루어지면서 백제시대의 많은 유물과 유적이 출토되었다. 1996년 토성의 동북쪽 구역의 조사에서는 지표 4m 정도 아래에서 초기 백제의 집터를 비롯해 가락바퀴, 그물추, 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1997년에도 신전으로 생각되는 특이한 구조의 유적과 희생동물의 뼈가 묻힌 곳이 발견되는 등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이처럼 출토된 유물의 질과 양으로 보아, 풍납토성이 백제 왕성인 한성(漢城) 또는 위례성(慰禮城)일 것으로 추정하는 견해가 다수이다.

청동 자루솥의 유입 경로는 정확치 않다. 그러나 이들 자루솥이 대부분 왕릉을 비롯한 대형 고분에서 발견된다는 점에서 평민이 아닌 왕실에서 사용한 물품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청동제 자루솥은 풍납토성을 백제 왕성으로 보는 학설을 뒷받침하는 유물 중 하나가 된다. 또 이는 삼국시대의 유물이지만 중국 동진(東晋)의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어, 이를 통해 발달된 남조(南朝)의 금속공예 기술이 백제에 전래되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따라서 백제와 중국 왕조의 교섭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라는 점에서도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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